반지의 제왕: 가운데땅 여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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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0 오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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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FFG)에서 출시한 신작 Lord of the Rings: Journeys in Middle-Earth(반지의 제왕: 가운데땅 여정)을 플레이할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시나리오를 연달아 진행하는 캠페인 게임이라서 진득하게 한 파티로 진행한다면 정말 좋겠지만, 주변에 해보고 싶다는 분이 너무 많아서 시나리오 1번과 2번만 다섯 번 가량 진행하게 됐습니다. 우선 여러 차례 게임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과 장점/단점을 찾아서 리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앱과 보드게임

엑스컴 보드게임부터 시작하여 FFG에서는 다양한 앱 기반 게임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제일 성공한 앱 기반의 게임은 단연 광기의 저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기의 저택은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한 던전 크롤링 게임으로, 미지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조사자들이 숨겨진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테마를 갖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괴물의 움직임, 조사자가 맞닥트린 사건 등을 앱을 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두꺼운 시나리오 북을 펼치지 않더라도 항상 플레이어가 마주할 상황을 풍부한 지문으로 제시해 준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 가운데땅 여정도 앱 게임입니다. 사실 한 문장으로 축약하자면 이 게임은 반지의 제왕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광기의 저택입니다. 동일한 구조의 앱을 활용하고 있고 코어 메커니즘도 비슷합니다. 다만 주사위 대신 덱을 활용한 확률 싸움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광기의 저택 2판을 즐기신 플레이어라면 아주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진행

상술한대로 이 게임의 기본 진행은 광기의 저택과 동일합니다. 각 라운드는 행동 단계, 그림자 단계, 집결 단계로 구성되며 사실상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것은 영웅 단계뿐입니다. 행동 단계에 플레이어는 돌아가면서 행동을 두 번씩 합니다. 같은 행동을 두 번 해도 되며, 서로 다른 행동을 하나씩 해도 됩니다. 가능한 행동의 수도 단촐합니다. 지도에서 2칸 이동하는 여행 행동, 적을 상대하는 공격 행동, 지도의 토큰을 보는 상호작용 행동. 이 세 가지 뿐입니다. 이를 통해서 지도를 넓혀나가고 적을 쓰러트리며 이곳저곳을 모험합니다.

각자 한 번씩 차례를 가진 후에 그림자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림자 단계에는 위협이 증가하고 어두운 곳에 있는 영웅은 공포에 질리며 적이 이동하고 공격해 옵니다. 집결 단계에는 각 영웅이 덱을 초기화하고 정찰을 하는데, 정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루겠습니다.

테스트와 확률

많은 FFG 게임에서는 어떤 일의 성패를 가르는 수단으로 테스트를 활용합니다. 베스트셀러인 아컴호러/엘드리치 호러 시리즈에서는 주사위를 굴려 5/6이 나오는 것을 성공으로 판단했으며, 광기의 저택에서는 커스텀 주사위를 굴려 별표가 나오면 성공으로 판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테스트에서는 주사위 대신 덱을 사용합니다.

덱은 기본적으로 카드 15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중 4장에는 성공 표시가 그려져 있습니다. 만약 힘 테스트를 하라고 했을 때 힘이 4인 경우 4장을 뽑아서 성공 표시를 가진 카드가 나와 있다면 테스트에 성공한 셈입니다. 하지만 주사위와는 다르게 카드를 뽑으면 덱에서 점차 카드가 줄어들기 때문에 확률이 순차적으로 달라진다는 비복원 추출의 양상을 지닙니다.

빌보는 민첩 테스트를 합니다. 빌보의 민첩은 3이므로 덱에서 카드 3장을 뽑아서 성공 아이콘 개수를 셉니다. 다행이도 성공 아이콘 1개가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의 테스트에서 하나의 성공을 노리기는 쉽지만 다중 성공을 노리기는 상당히 힘들게 되지요. 첫 번째 성공을 뽑을 확률은 4/15지만 두 번째 성공을 뽑을 확률은 3/14로 확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확률을 조정하는 것도 유저의 몫입니다. 이 게임에서는 두 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사용하여 확률 조정을 합니다.

첫 번째는 숙명 시스템입니다. 어떤 카드는 나무 잎사귀 모양의 숙명 아이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숙명 아이콘은 자체로는 효과가 없지만 고무 토큰을 사용하면 성공 아이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카드는 숙명 아이콘을 갖고 있죠. 따라서 내가 고무 토큰이 충분하면 테스트 성공을 점쳐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정찰 시스템입니다. 매 라운드를 마칠 때 밟는 집결 단계에서, 각 플레이어는 카드 2장을 정찰하게 됩니다. 정찰이란 덱 맨 위 카드 2장을 펼쳐서 최대 1장을 준비시키고 다른 카드는 덱 위나 아래에 원하는 대로 끼워 넣는 시스템입니다. 이를 통해 성공 아이콘을 가진 카드를 위로 올리고 아이콘이 없는 카드를 밑으로 끼워 넣는 등 확률 조정이 가능합니다.

덱과 카드 운용

그렇다면 덱은 테스트에만 사용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각자 기본 카드 6장, 캐릭터 카드 5장, 역할 카드 3장 그리고 약점 카드 1장으로 덱을 구성합니다. 기본 카드는 모든 영웅이 동일하지만 캐릭터 카드는 영웅마다 고유하며 직업 카드는 이번 캠페인에서 어떤 역할을 택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러한 직업 카드는 덱에 섞여있을 때는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앞서 언급한 순찰을 통해 카드를 준비시키면 그 효과가 발휘됩니다. 그리고 덱을 구성하는 카드의 종류가 상이하기 때문에 모두가 다르게 캐릭터를 운용해야 하고요.

캠페인을 시작할 때는 일반 카드 6장, 영웅 카드 5장(여기서는 레골라스), 역할 카드 3장(여기서는 길잡이), 약점 카드 1장(그림엔 없습니다.)으로 덱을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 카드에서 레골라스의 경우 요정이므로 불멸성을 얻어서 받은 피해와 공포를 치유할 수 있지만, 필멸자인 아라고른은 인간의 의지를 불태워서 공포를 저항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할 카드에서 수호자는 가까운 영웅이 받는 피해를 막아주고 대장은 협동 공격을 하게 해주며 좀도둑은 은신을 하고 적의 뒤를 노리는 등 캐릭터마다 다양한 활약을 펼치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캐릭터 카드와 역할 카드가 조합되어 하나의 영웅 덱을 구성하는데, 레골라스는 사냥꾼/빌보는 좀도둑과 같이 추천하는 역할 조합이 있지만 원한다면 음악가 김리, 좀도둑 아라고른처럼 재밌는 캐릭터 조합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더 잦아진 전투, 높아진 역할 분담

이 게임은 모체가 된 광기의 저택 2판과는 달리 전투에 매우 치중된 게임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위협 게이지가 증가하고 증가한 위협 게이지 때문에 사건이 벌어집니다. 대다수의 사건에서는 새로운 적이 출현합니다. 이렇게 계속 게임판에 적이 보충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적들의 소굴을 찾아야합니다. 하지만 지도는 너무 넓게 퍼져있고 적은 사방에서 옥죄여 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적을 전부 쓰러트리고 목표를 찾으러 간다? 목표를 향해서 달린다?

전투를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는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쉽습니다. 영웅이 셋 이상 뭉쳐있으면 서로의 시너지로 어찌저찌 상대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연약한 영웅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이 게임에서 최적의 답은 “둘 다 해내야 한다.”입니다. 위협 사건으로 인해서 적은 계속 보충되는데 이를 모두 쓰러트리기에는 쪽수가 많습니다. 하지만 몸으로 막으면서 달려가자니 광기의 저택 2판에 비해서 체력과 정신력은 비루하기 짝이 없는데다, 영웅이 네 칸 가면 적은 다섯 칸씩 따라오곤 합니다. 달려가다간 몇 대만 스쳐도 빈사 상태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싸우며 버틴 후에 찾으러 가겠다면? 위협 게이지가 오를텐데, 위협 게이지가 꽉 차면 패배합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누군가는 답을 찾아서 빠르게 이동하고 다른 누군가는 적을 막아 줘야 합니다. 영웅들은 함께 있으면 서로 시너지를 내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고 능숙한 전투를 펼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짜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힘쓰는 친구들이 앞에서 저지하며 시간을 만들어주는 동안 이동을 잘하는 길잡이 베라보르나 잽싼 좀도둑 빌보와 같은 친구들은 맵을 이리저리 넓히면서 소중한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다른 영웅들이 적과 싸우며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에 누군가는 자신의 임무를 해내야 합니다. 레골라스와 아라고른이 지도 중간에서 적을 상대하는 사이 빌보는 빠져나가서 숨겨진 적 요새에 진입하려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말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매끈하게 잘 연결된다는 점이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서로를 온전히 믿어야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야 하며 서로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몇몇 분들의 말로는 이러한 시너지 요소는 광기보다는 오히려 정령섬과도 비슷한 맥락을 갖고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캠페인 게임

반지의 제왕: 가운데땅 여정은 캠페인 게임입니다. 기본판에는 "에리아도르의 그림자"라는 캠페인이 포함되어 있고, 이 캠페인은 10개 이상의 연속된 시나리오로 구성됩니다. 샤이어와 인근 지방인 에리아도르에서 최근 도적떼가 횡행함에 따라 그 뒤에 감춰진 어두운 진실을 찾아서 영웅들이 나선다는 이야기인데, 광기의 저택 2판과는 달리 각 시나리오를 따로 플레이 할 수는 없습니다. 즉, 한 번 게임을 진행하면 캠페인 결말을 볼 때 까지 같은 파티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운명 공동체가 된 플레이어들은 함께 가운데땅을 모험하고 지식을 얻어서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며 덱을 강화시켜 나갑니다.

이 외에도 캠페인 게임에서 특이한 요소는 바로, 어떤 시나리오는 여정 지도(일반 지도)에서 펼쳐지고 다른 시나리오는 전투 지도에서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여정 지도는 탐험의 요소가 짙은 반면 전투 지도는 1부터 10까지 전투에 치중된 시나리오라서 그 느낌이 색다릅니다. 두 지도에서 적용되는 핵심 규칙은 비슷하지만 전투 지도에서는 주변 환경 요소가 추가되어, 수풀이 있는 칸에서 차례를 마치면 은신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모닥불이 있는 칸에서 전투를 하면 방어구 관통을 얻는 등 전략적인 요소를 활용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어떤 시나리오는 광기의 저택 2판: 아컴의 거리 확장에 포함된 불운의 전시전 시나리오와 비슷하게 플레이어가 여러 인물과 대화하면서 스파이를 추리해 내야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전투 지도 게임에서는 훨씬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주변 지형 지물을 잘 활용하고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주변 아군을 도와야 합니다.

소소한 단점

이 게임은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단점 역시 존재합니다. 우선 앱 기반의 게임이라는 것은 양날의 검입니다. 클래식한 테이블탑 게임 유저에게 앱이 보드게임 컴포넌트의 영역을 넘보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덱 시스템은 꽤나 공들여 개발한 티가 나지만 매 차례마다 잘 섞어서 새로 정돈해야한다는 점은 귀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캠페인 시스템은 캐릭터 성장 요소가 가미되어 플레이어의 몰입감을 높여주긴 하지만 개별 시나리오를 플레이할 수 없다는 점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아컴 호러: 카드 게임과 같이 각 시나리오를 개별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도구를 제공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울러 아직 초창기 앱이라 그런지 크래시 보고가 잦습니다. 그리고 뒤로가기 버튼이 없는만큼 신중하게 버튼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 몇몇 태블릿에서 탭, 주밍 등의 민감도가 과하게 높은 점 등 아직 앱의 디테일한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을 사소한 결점으로 꼽을 만 합니다. 아울러 광기의 저택 2판에 비해서 영문 지문의 난이도가 높은 편입니다. 특히 초반 시나리오가 좀 그러한데, 그것만 넘기고 나면 파티에서 한 명이 해석해준다는 하에 진행의 애로사항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반지의 제왕 톨킨 세계관에서 펼쳐지지만 게임이 펼쳐지는 시점은 호빗 후 반지의 제왕 전입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어느정도의 게임적 허용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라고른, 김리, 레골라스는 깊은골에서 원정대가 꾸려지기 전에는 서로 면식이 없던 인물이지만 그보다 훨씬 과거 시점인 게임에서 함께 등장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또한 영화와 소설에 익숙하신 분들께는 아쉽게도 기본 캠페인은 샤이어와 인근 지방 에리아도르만을 무대로 하는 외전격의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이 가져다주는 장대한 서사를 즐기고 싶으신 분에겐 아쉬움이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FFG와 디자이너

본 주제에서 좀 벗어난 이야기 하나로 리뷰를 마무리지어볼까 합니다.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FFG)는 보드게임계에서는 꽤나 잔뼈가 굵은 회사이고, 몇몇 전속 디자이너를 데리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리벨리온, 광기의 저택 등을 디자인한 코리 코니즈카, 그리고 얼마 전 퇴사했지만 엘드리치 호러, 광기의 저택 2판, 아컴 호러 3판 등을 디자인한 니키 발렌스 등이 유명합니다. 전속 디자이너가 있는 게 뭐가 특이하냐고 하겠지만 사실 특이한건 전속 디자이너의 유무가 아니라 FFG는 아이디어 그룹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카드 게임에서 개발된 기초 시스템은 아컴 호러: 카드 게임으로 변주되었고, 폴아웃 보드 게임에서의 조우 시스템은 아컴 호러 3판의 코덱스 시스템으로 발전했습니다. 이 외에도 디센트는 둠 보드 게임의 기초가 되었고, 크툴루의 부름: 카드 게임은 워해머: 컨퀘스트의 기틀을 제공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시스템의 재탕이라고 하겠지만 어찌 보면 하나의 게임 회사 내부에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변형하여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이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운데땅으로의 여정은 광기의 저택 2판의 아류작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신선한 시스템으로 보강을 하고 나온 또 다른 대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디센트 확장과 광기의 저택 확장 위주로 디자인을 하던 신예 디자이너 네이선 하이젝과 그레이드 홀딩하우스가 아무런 기틀 없이 만들어 낼 수는 없던 게임입니다. 좋은 시스템을 잘 살리고 개발할 수 있는 근간에는 이러한 FFG의 아이디어 공유 요소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총평

이 게임은 광기의 저택 2판에서 출발했지만 나름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두 게임은 비슷한 점이 많지만 각자 고유의 맛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앞으로 발전할 여지를 남겨뒀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의 시스템은 어딘가 익숙한 것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로 손에 잡혔을 때 새롭고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서로를 도와 위기를 헤쳐나가는 협력 게임을 좋아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적극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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