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보드게임 방과후 수업 후기입니다

1,528 조회

2019.03.28 13:03

첫 수업 시작이 지체되어서 실제 진행 시 사진 찍을 여유가 없었고, 학생들이 찍힌 사진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게임에 초점을 두느냐, 학생 지도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글의 방향이 갈립니다.
제가 미숙한 관계로 첫 글은 주제가 명확하진 못 합니다.
글은 용도에 따라 세 편을 썼는데, 개인 기록처럼 남긴 글을 보드라이프에 올리는 것이라서, 본문은 1인칭(일명 half word)으로 썼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4층으로 올라가니, 교실 앞 복도에 앉아서 기다리는 학생들이 보였다.
정장에 구두로 분위기를 내고 걷고 있던 나를 본, 한 학생의 반응
"와! 고수다~~"

선생님과 나는 웃으며 학생들과 인사하며, 교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6명의 학생들? 9명이 와야 하는데, 아직 안 왔나?"
나는 수업에 사용할 게임과 가방을 놓고 학생들을 살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며, 전화도 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학생들을 찾았다.
시간은 20여분 지체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일단 시작하기로...

우선 학생들에게 명찰 표를 나누어주고 본인의 별칭을 스스로 적게 했다.

나는 마키, 선생님은 사회쌤 그리고 여학생 둘은 하늘과 최저가, 남학생 넷은 레전드, 트롤, 발리, 마블.

3명의 학생은 제외하고 6명의 학생과 사회쌤까지, 7명이서 너도나도를 시작함.
나는 사회를 보며 설명을 해주고, 분위기를 끌고 갔다.

첫 번째 주제 - 성(캐슬)
기본규칙으로 진행했으며,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게임을 진행했음.
기대 이상으로 학생들은 진지했고, 자신의 단어가 다른 학생들과 일치할 때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이 게임을 첫 게임으로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됨.
트롤은 8개를 다 쓰지도 못했고, 쓴 단어들도 점수가 높지 않아서 꼴찌가 확실했다.
나는 등수는 발표하지 않고 몇 점 이상이 누구누구이다 라고만 하고, 꼴찌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뻔히 누군지 다 알지만 웃으며 받아들였다.
참고로 트롤은 2라운드까지 합친 점수가 10점도 안되었음... ㅡ.ㅡ;;;

두 번째 주제 - 가수
응용 규칙으로 단 한 명만 손을 들 경우 1점이 아닌, 최고점인 6점을 주기로 했다. 주제의 범위가 넓으면 학생들의 답변이 다양하게 나뉠 수 있는데, 그 와중에 일치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단어를 발표하는 학생이 한 단어를 말하자, 같은 단어는 아무도 없었다(이 순간 좌절).
그러나 한 학생이 비슷한 단어 하나를 말하며, 이것도 같은 것으로 인정해줄 수 있느냐? 하고 요청을 했고, 나는 충분히 유의어라 판단하여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자, 둘이서 쳐다보며 6점 받는다고 좋아하는 순간!!!
사회쌤도 손을 들며, 이 단어도 비슷한 것 아니냐? 하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엔 그 두 명의 학생들은, "달라요~~~" 를 외쳤다.
나는 웃으며, 자신에게 유리할 땐 인정해 달라고 하고, 불리해지자 바로 인정 못한다고 하는 상황을 부각했다.
이러고 있는데, 한 학생도 조용히 손을 들며, 이 단어도 인정되느냐? 하고 말했고, 나는 전부 인정해주며 3점씩 점수를 주었다. 그러자 다들 적정선에서 타협하는 모습을 보임.

세 번째 주제 - 로봇
이제 두 번해봤으니 익숙해졌을 거란 판단에, 학생들에게 단어를 적을 때 좀 더 다른 사람들의 단어도 예상해보란 의미로 점수 방식을 추가했다. 그건 바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면 0점이 아닌 -1점으로 하기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게임을 시작!
단어 8개 적기가 끝나고 발표를 하는데, 발리는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은 다 마이너스일 것 같다는 말을 함. 본인이 적고도 남들과 공감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아는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로봇에 대해 8개를 쓰라고 했더니, 발리가 쓴 단어는 눈, 머리, 팔, 다리, 몸통 등...(발리가 첫 단어로 눈, 두 번째 단어로 머리를 발표하자, 설마 팔, 다리 나오는 것 아니냐? 했던 농담이 현실로...)
레전드는 절묘하게(?) 다른 학생들과 하나씩만 겹치며 최고점 6점을 네 번이나 가져가며 압도적인 점수를 내었는데, 결국 총합계에서도 일등을 하였다.
나는 레전드가 다른 학생들의 4차원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어서, 6명의 4차원을 지닌 24차원이라고 평가해주며 일등 축하를 해주었고, 다음 게임의 선택권도 부여했음.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이제는 학생들을 3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러브레터와 미션007을 하였다.

사회쌤은 레전드, 발리, 하늘과 러브레터, 나는 마블, 트롤, 최저가와 미션007!

러브레터는 초심자들에게 먹히는 게임이 확실하다. 학생들은 금방 적응하며 즐거워했고, 나름 치열하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레전드는 결국 한 판도 못 이기자, 다음 시간에 다시 하자고 의욕을 드러내었고, 하늘이는 시간 많다며 더 하고 가지고 했음.

미션007은 369게임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학생들이 어려워했다. 게임 룰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안 익숙해서 어렵다고 해야겠다. 특히나 최저가와 마블은 수 개념이 부족한 것이 드러났다. 나는 게임 템포는 최대한 늦추고, 학생들에게 요령도 알려주며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게임을 진행했다.
미션007은 자신의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할 때도 같이 한다고 생각하고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1부터 7까지 올라갔다가 7에서 다시 1로 내려가는데, 4명이서 하게되면 특정 숫자가 반복되니까,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알려줌. 예를 들어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자신의 차례에 1과 5, 5와 1이 계속 반복된다고.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능력 수준에 맞추어서 요령과 격려를 해주며, 아주 천천히 게임을 진행함.

그렇게 재미있었던 시간은 종강 시간이 15분이나 훌쩍 지나갔고, 학생들에게 수업계획표와 설문지를 챙겨주며 인사를 하고 보냈다.

나도 선생님과 뒷정리를 하며, 오늘의 첫 수업을 평가함.

하늘. 처음에 걱정되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적극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임. 목소리 작고, 수학적 능력이 부족함

(목소리가 하늘로만 가. 나에겐 안 들 려 ㅜㅜ)

최저가. 눈을 잘 맞추고 의사표현 능력이 있음. 센스나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나 발전 가능성이 있음.

(경매 게임을 해야 하나? 최저가 낙찰!!!)

레전드. 뺀질거림이 있음. 그러나 그 뺀질거림은 나름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같음. 적극성과 판단능력 다 맘에 듦. 어느 쪽으로 특출 난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가장 가능성이 큼.

(이 자신감은 뭐지? 두고 보겠음!)

트롤. 신중한 편이고 자신만의 템포를 잘 끌고 감. 머리도 좋아 보임. 다만 공감능력이나 센스가 부족해서 사회성 향상이 필요함.

(보드게임의 세계를 알고 나면, 트롤이란 닉이 불편할 건데 ㅋㅋ)

발리. 레전드와 더불어 뺀질거림. 다른 점은 센스와 판단능력은 있으나 기본적인 지적 수준이 부족함. 게임의 재능은 있어 보이나 기본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음.

(발리는 재미있었어? 훗!)

마블. 조용하고 신중함. 언어적 능력이나 지적 수준은 높은 편. 그러나 수학적 능력과 의사표현능력이 떨어짐. 내성적이고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을 고칠 수 있다면, 발전 가능성은 있음.

(노래-비틀즈, 퀸, 임창정. 로봇-건담, 아이언맨, 터미네이터를 씀. 누구냐 넌?)

이렇게 6명의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9명이 다 오지 못한 것이 아쉽고, 생각보다 학생들의 수준이(선생님은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낮아서 수업 진행 속도를 천천히 가져가며 게임의 수준을 더 낮추어야겠다고 판단했다.

수업계획표는 학생들에겐 기대감을 가지게 하고(본인들은 알지 못했던 다양한 게임들이 잔뜩 있으니),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게 되면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라 이런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능력을 길러준다고 알려주는 용도이다.

설문지는 숙제는 아니고, 학생들의 생각을 파악하고, 의사표현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혼자서 생각만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느냐? 하는 교육적 차원에서이다.

그렇게 첫 수업은 끝이 났고, 반응과 성과 다 좋았다. 이제 남은 건 학생 개개인의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맞추어주면서, 전체를 끌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인데...
나와 선생님 둘이서 학생 9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학생들과 1학기를 넘어서, 잘하면 최대 3년 내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한 학생은 3년 동안 해도 되냐고 물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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