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채우기 #2 - [MERIDIAN 메리디안]

콩키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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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오후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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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시간이 남아 하나 더 달려볼까 합니다.

모두들 자기 취향과 특별히 더 잘 맞는 디자이너가 있으시죠? 전 아직 해본 게임이 이제 겨우 150개 정도를 갓 넘긴 무늬만 중급(?) - 용평스키장이라면 그린 코스에 막 처음 올라간 정도라 할까요?? - 게이머이지만 벌써 최애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바로 Leo Colovini 인데요, 상급, 최상급 게이머들은 이미 졸업한지 오래되었을법한 풋풋한 게임들 많이 만든 디자이너입니다.

Incognito, Carolus Magnus, Clans, Vabanque 등등 유명한 작품외에도 90여개의 작품을 남겼는데요, 몇몇 게임들 제외한 대부분이 geek 평점 6,0을 넘지 못하는 두 세대쯤 지난 퇴물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다른 토핑 전혀 없이 팥만 올려진 오리지널 팥빙수를 먹는 것과 같은, 간단한 룰로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진짜 원조 보드게임을 느끼게 해주는 디자이너입니다.

그 중 리뷰 없는 게임 두번째 MERIDIAN 입니다.

사실 이 게임은 제가 1년쯤 전 중고장터에서 구입했는데 막상 받아보니 뒤틀린 박스, 코팅되어 100명쯤 손을 탔을법한 카드, 영문 룰북조차도 없는 너덜너덜한 상태로 받고는 잠시 분노(?)를 했었던 게임입니다. 바로 아스테이지 비닐로 예쁘게 포장을 하고 고이 보관 중입니다만, 이제 시간이 지나고 많은 게임들을 보다보니, 오히려 요즘엔 이렇게 오래되고 버려진 게임들이 더 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다락방에 올라 할아버지가 남기신 먼지쌓인 오래된 게임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잡설이 길어졌네요. 이미 10여년 전 많은 분들께서 해보신 게임이리라 확신하지만, 기록이 없는 관계로 ^^ 일단 채워보려합니다.

MERIDIAN

Theme

보드판에는 15세기 대항해시대쯤에서나 쓰였을 것 같은 고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9개의 자오선으로 구분된 10개의 영역이 있고, 3,4개 영역에 걸쳐진 섬 13개가 3개에서 5개의 도시를 품고 있습니다.

딱 봐도 고전 영향력 게임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섬 안에서 도시 많이 차지하기 쯤 되겠네요.

룰북에서는 garrison이라고 하는 고깔모양의 플라스틱 콘을 켭켭이 쌓으면서 도시에 배치하는데, 막상 요새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하려니 섬들 사이로 이동하는 개념이 뭔가 와닿지 않아서 저는 혼자 서로다른 4개의 민족의 이동이라 생각하고 설명하고 플레이 했습니다. 어쨌든 영향력 게임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게임은 몇가지 간단한 룰만으로 진행됩니다.

1. 모든 영역에 처음 놓는 요새는 반드시 2층 이상이어야 한다.

2. 각 영역에 건설하는 모든 요새의 높이는 모두 달라야 한다.

3. 각 영역 안에서 건설하는 요새의 층수는 아래쪽에 위치한 요새의 층수보다 반드시 커야한다.

4. 한 플레이어는 한 영역에 하나의 요새만 건설할 수 있다.

이 4가지의 간단한 룰로 자신의 턴에 비어있는 도시에 요새를 건설하여 각 섬의 영향력 우세를 점하고 섬의 크기에 비례한 영향력 점수의 합이 높은 사람이 승리하게 됩니다.

얼핏 보기에 너무나 뻔해 보이는 영향력 게임이 실제로는 어떤 고민을 던져주는지 살펴볼까요?

먼저 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규칙 3가지를 먼저 짚어보고 세부 룰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A. 모든 영역에 처음으로 건설하는 요새는 반드시 2층 이상 이어야 한다.

B. 다른 플레이어가 점유하고 있는 도시에 자신의 요새를 건설하여 다른 플레이어의 요새를 밑으로 밀어내리거나 위로 밀어올릴 수 있다.

C. 중복 영역카드를 사용할 때, 기존의 자신이 건설한 요새를 다시 가져와서 같은 영역 내에 다시 건설하거나, 다음번 사용을 위해 철거를 할 수 있다.

B요소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이 한 영역 카드를 플레이하고 요새를 건설하려 할 때 고민할 것은 바로 1) 어떤 섬을 타겟으로 삼을 것인가, 2) 몇 개의 요새를 건설할 것인가, 3) 내가 원하는 인접한 영역 카드가 제때에 나와줄 것인가 4) 상대편이 플레이할 수 있는 카드는 어떤 지역인가정도입니다.

섬 단위의 영향력 계산이기 때문에 모든 섬이 아닌 특정 섬을 타겟으로 영향력을 취사선택하여 공략해야하는데요, 문제는 내가 특정 도시에 건설할 요새를 몇 개로 할 것이냐에 따라 상대편이 나의 요새를 고위도나 저위도 도시로 밀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달라지게 됩니다. 즉 나의 요새가 인접한 위 아래 도시로 밀릴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타겟으로 삼는 섬에 요새를 건설하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한 주어진 요새의 수가 고작 20개이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한 영역에 건설할 수 있는 요새의 수는 평균 2개입니다. 한 영역에 5개를 놓게되면 다른 영역에 놓을 수 있는 요새의 수가 매우 빡빡해지게 되는거죠. 따라서 가장 아래에 있는 도시 3개짜리 섬 3개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놓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많은 요새를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동시에 2)도시의 수가 3개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 우세를 점하기도 쉽고, 3) 결정적으로, 가장 아래에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한 도시에 1개의 요새를 건설하면 다른 플레이어가 더 이상 아래로 혹은 위로 밀어버릴 수 없다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즉 바보가 아니라면 제일 먼저 가장 아래쪽 섬에 1개의 요새를 차례로 건설하는 것이 필수인 단순한 게임이 되는거죠. 물론 선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구요.

Leo Colovini는 게임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바로 A 조건인데요, 모든 영역에서 가장 저위도 도시를 요새 하나로 선점하지 못하도록 막은겁니다. 이제 가장 아래쪽 도시를 선점하려면 적어도 2층 이상의 요새를 건설해야 하는 걸로 바뀐거죠. 만약 제일 아래 도시에 2층짜리 요새를 건설했다고 가정하면, 다음 플레이어에게 당연히 전략적으로 하나의 요새를 건설하며 위쪽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꽃놀이패를 주게 되는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밑에서 두번째 도시에 2층짜리 요새를 건설하자니 다음 플레이어가 가장 밑 도시를 무혈입성하듯 점유하게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으니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또하나의 변수는 각 플레이어가 두 장의 카드를 open하고 그 중 한 장의 카드를 사용하도록 한 것인데요, 상대방의 영역카드를 모두 살펴보면 내가 타겟하는 영역에 상대편이 밀어내기를 할 수 있는지를 읽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운좋게도 내가 타겟하는 영역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펼쳐놓은 카드가 겹치지 않는다면 고민 없이 가장 아래쪽 도시를 점유할 수 있겠죠.

이 게임의 또다른 재미는 C 요소에 있습니다.

중복영역 카드의 존재인데요, 신경써야 할 도시에 비해 주어진 요새의 수가 부족하다보니 몇 개의 지역에 집중하여 요새를 건설할 수 밖에 없는데, 상대방의 밀어내기 때문에 나의 계획에 종종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이때 중복영역 카드를 사용하여 요새 배치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딱 3번 주어집니다. 이 기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승패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 계획이 틀어진 영역에서 과감히 요새를 철거하여 다른 영역에 집중할 요새를 보충하거나, 2) 같은 영역 저위도 도시로 요새를 재배치 하는 옵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두 가지 선택 모두 낭비된 요새의 효율을 높여주는 장치인데, 끝까지 판세를 확신할 수 없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 조차도 카드 운빨로 인한 고민거리를 안겨줍니다. 바로 중복영역 카드가 너무 일찍 뜨거나 특히 두 장의 카드를 초기에 미리 소진하게 되면 정작 그 카드들이 필요한 후반부에 대처를 할 수 있는 옵션이 줄어든다는 헛점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모든 세부 상황과 요소들을 다 짚어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perrier의 참맛을 느꼈을 때의 기분으로 이 게임을 비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깔끔하고 간결한 게임성이 마치 설탕으로 인한 갈증이 없는 탄산수의 시원한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요.

고수분들에게는 오래된 따분한 영향력 게임이겠지만 초 중급 플레이어에게는 참 괜찮은 게임으로 추천하고 싶은 Leo Colovini의 작품이었습니다.

또 횡설수설 했네요. 한 가지 설명을 빠뜨렸네요. 섬 위의 노란 원이 표시된 도시는 수도를 나타냅니다. 수도는 일반 도시 2개의 점유와 같은 영향력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수도의 공략도 매우 중요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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