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결산후기, 11, 12월

쿠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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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1 오후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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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에 게임을 더 하지 않을까 해서 작성을 미뤘는데, 별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미리 쓸 걸 그랬네요.

11월, 12월 함께 씁니다. 마지막 글이네요. 사진은 구글과 긱에서 슬쩍해왔어요.

레이스 포 더 갤럭시 (Race for the galaxy) 46회

휴대용 게임이 필요했습니다. 러브레터 말고 좀 전략적인걸로… 그러다가 그냥 카드게임 끝판왕을 뫼시기로 했죠. 꽤나 성공적인 선택이었던 거 같네요. 친구들이 엔진 빌딩을 좋아해서 고른 것이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요즈음 만났다 하면 꺼내는 그 게임. 레이스 포 더 갤럭시, 이하 레포갤입니다.

본판에 포로모 포함하면 카드가 120장인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엔진 빌딩을 즐길 수 있어요. 대부분의 카드가 한 장만 있고, 중복돼야 2장이므로 매 번 다른 엔진을 만들게 됩니다. 큰 틀이야 내가 고를 수 있는 5가지 행동에 귀속되겠지만요. 게임 종료 조건도 아주 예리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엔진을 만들다 보면 필연적으로 게임이 끝나요. 게임이 질질 끌린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 턴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매 판 남아요. 혹은 그만 키우고 엔진을 진작 돌렸어야 했다는 후회라든가.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런 점들과 짧은 게임 시간은 좋은 시너지를 내죠. 한 판 더 합시다. 이번엔 내가 이길겁니다. 아 아니네. 한 판 더 합시다. 이번에야말로 이길겁니다.

다양한 카드. 다양한 개성. 다양한 효과가 있겠죠. 이 효과를 아이콘으로 때려박았습니다. 효과를 아이콘으로 표시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으로는, 익숙해지면 아주 신속한 플레이가 가능해집니다. 슥 보기만 해도 무슨 효과가 있는지 알아요. 찬찬히 읽지 않아도 그 카드의 가치를 단번에 파악하고 향후 수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래서 언제 익숙해지느냐는 거죠. 난해한 효과에 한해서는 카드 귀퉁이에 글로 설명을 해 놔서 읽어보면 돼요. 아쉬운 점은, 쉬운 효과들도 그렇게 설명해줬으면 좋았을거란 말이죠. 쉬운 효과들만 따로 모아놓은 참조표를 첨부해놓긴 했는데, 글쎄요. 굳이 높지 않았어도 될 진입장벽이 생겨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수출 번역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도 아니고 말야. 이것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입니다, 여러분. 하지만 게임이 재밌으니 봐줄게요. 저는 모든 아이콘을 부분한글화 하는 것으로 타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터렉션이 약하다는 점을 주 단점으로 꼽습니다만, 저는 이 게임의 인터렉션이 결코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터렉션의 종류가 다른거라고 봐요. 꼭 상대방을 때리고 부수고 빼앗고 기분 나쁘게 만들어야만 인터렉션인 것은 아니죠. 앞서 얘기한 것들이 능동적인 것이라면, 레포갤에서의 인터렉션은 수동적인 양상을 띱니다. 내 행동이 상대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 상대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그 행동이 내게 이득이 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인터렉션이 격렬하지 않다는 게 결코 비중이 낮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 할 것만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에요.

인터렉션 하면 흔히 미식 축구 같은 느낌을 떠올리지만, 레포갤의 인터렉션은 쇼트트랙 같은 겁니다. 각자 레이스를 하는 와중에 내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해 대비해두지 않고 욕심을 부리면 고꾸라지는 거죠. 노골적으로 맞부딪힐 일만 없는 거지, 단거리 육상 같은 솔리테어 게임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레포갤의 정수는, 이 인터렉션에서 옵니다. 내가 하나의 행동을 고르면,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 행동을 하게 됩니다. 남들이 고른 것 역시 내가 할 수 있어요. 상대방의 손패 장 수와 깔려있는 카드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어내야 합니다. 근데 문제는 상대방도 내 동태를 살핀다는 점입니다. 치열한 심리전이 되는 거죠. 심리전에서 진다면 한 라운드에 의미있는 행동을 하나 밖에 못 하겠지만 (혹은 아예 못 할 수도),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데 성공했다면 둘 이상의 행동으로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긱에서는 이걸 leech라 표현하더라구요. 레포갤에서 이 행위가 갖는 비중을 생각해보면 아주 적절한 명칭입니다). 이 차이로 앞서나가는 겁니다. 상대방의 행동을 성공적으로 예측했을 때 상당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게임의 시스템은 서로가 서로를 예측하고 파악하게끔 훌륭하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카드 게임인지라 카드 운이 분명 작용합니다만, 승패에 영향을 주는 비중이 더 큰 것은 앞에 얘기한 인터렉션이에요. 온라인에서 고수들은 항상 정상을 지키고 있고, 중수가 고수를 이기는 경우는 16% 정도라고 하네요.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어중한간 값입니다만, 완전 운 게임은 아닌거죠. ELO 분포를 기준으로 운 요소를 계산한 긱 유저도 있는데요. 0이 완전 실력겜, 1이 완전 운겜이라 했을 때, 체스는 0.0005, 레포갤은 0.11, 넷러너는 0.22의 값을 갖는다고 하네요. 깊게 팔 여지는 충분한 게임이에요. 확장도 많죠. 한 번에 다 쓸 수는 없지만.

2~4인플을 다 해봤는데요. 2인플은 두 가지 종료 조건이 비등비등하게 달성되는 반면, 다인플에서는 한쪽 조건이 월등히 자주 만족돼요. 한 쪽은 혼자 달려서 달성하는 조건이지만, 다른 쪽은 모두가 같이 해야 도달하기 쉽거든요. 다인플은 이게 분산이 돼서 잘 안 나오지만, 그 쪽 전략 자체가 약하다는 것은 또 아니거든요. 그리고 2인플에선 상대방만 신경쓰면 되지만 다인플에선 눈치 볼 사람들이 늘었죠. 예측하기가 조금 더 어려워져서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해 줄 사람이 있는지를 중점으로 보게 되더라구요. 이 두 요소 덕에 2인플과 다인플의 양상은 매우 다릅니다.

2019년은 이 게임을 마르고 닳도록 즐길 예정입니다. 아직 해 볼 확장도 많고, 확장 하나가 또 나올 예정이니까요.

레이스 포 더 갤럭시 : 게더링 스톰 (RftG : The gathering storm) 17회

확장 하나 넣어 봤어요. 게임 인원이 2~4인용에서 1~5인용으로 늘었습니다…만 1인플은 안 해봤구요. 치밀한 오토마인 거 같아요. 22장의 카드와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적을 제공합니다.

업적은 최초 업적과 최대 업적으로 나뉘는데요. 테포마 해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것들일거예요. 업적으로 얻는 점수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양이 아니므로, 게임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서로 경쟁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구요. 반대로 내 엔진의 방향이 제시된 업적으로 강제되기 쉽다는 점이 부정적인 요소겠네요. 업적은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므로 입맛 따라 하시면 됩니다.

5인플도 많이 해 봤습니다. 난전이에요. 재미는 있는데 정신이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조금 더 넓은 테이블을 찾아봐야 할까요. 업적을 노리는 것이 다섯명이므로 더욱 치열한 느낌은 좋아요.

17장의 빈 카드… 커스텀 카드 컨테스트도 했다는데 9년 전에 마감이 됐군요. 어따 쓰지.

팬데믹 레거시 시즌 1 (Pandemic : legacy 1) 6회

규칙서와 개봉시 공개된 컴포넌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분들만 적었습니다. 아예 백지 상태로 이 게임을 접하고 싶으신 분께서는 다음 게임으로 주르르륵 내려주세요. 이제 5월이 끝난 터라, 이 게임의 진가는 아직 몰라요.

우선 개봉해서 찬찬히 보면, “지시가 있기 전까지 열지 마시오.” 가 한가득이구요. 규칙서나 보드판, 케릭터 시트를 보면 공백이 많습니다. 공백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채워질 거라는군요. 늘어나는 요소가 있으면 줄어드는 요소도 있습니다. 진도를 나갈수록 게임은 영구적으로 변형되며 레거시를 즐기는 모든 그룹이 각자의 고유한 서사를 써 나갈것이라 하네요. 흥미진진하죠?

새 보드 게임을 영입했을 때의 우리 모습을 떠올려봅시다. 보드게임을 뜯을 때의 행복. 종이 타일을 펀칭할 때의 신남. 카드를 뜯고 슬리브를 씌우면서 한 장 한 장 훑어보는 즐거움. 목재나 플라스틱 컴포넌트들을 꺼내 감상하는 설렘. 규칙서를 읽고 게임 돌아가는 모양을 상상하는 기대감. 아 빨리 해보고 싶은걸?

이 레거시는 저 설렘을 12번 제공해줍니다. 매 월마다 뜯어야 될 것들과 추가되는 규칙이 있단 말이에요. 레거시 덱 보면 엄청 두껍거든요? 비밀 문서는 대여섯 장에, 보관함도 8개나 됩니다. 아니 라운드는 12갠데 뭐 이리 두꺼워 얼마나 푸짐한거야 허허 뭐 이런 걸 다 준비하고 그래 설레게. 그리고 스티커도 제공해줍니다. 처음이에요, 중간에 스티커를 붙여 게임을 변형하는 거요. 복잡미묘한 새로운 기분이었습니다. 아, 이래도 되나? 네, 이 게임은 돼요. 추가되는 게 있으면 사라지는 것도 있는 법인데, 차마 찢지는 못하겠더라구요. 고이 모셔뒀습니다.

레거시 덱에는 정지! 라고 쓰인 카드들이 있습니다. 정지! 라고 쓰여있는 면 까지는 읽으셔야 돼요. 뒷면만 확인 안 하면 됩니다. 이걸 안 읽어서 첫 게임을 레거시가 아닌 그냥 팬데믹을 해버렸어요. 연습한 셈 치죠 뭐 허허.

저는 2인플을 했는데, 확실히 2인플이 좀 아쉽긴 해요. 일단 한 게임에 케릭터가 둘만 등장하니까 모든 케릭터를 다 활용하기 어렵구요. 케릭터 시트마다 있는 공백을 다 채울 수도 없어요. 흑흑 스티커 붙이고 싶다. 2인 게임은 난이도가 많이 쉬워요. 2월부터 파죽지세로 클리어 해 나가고 있습니다. 레거시 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고유한 경험의 공유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은 많을수록 좋죠. 다만 지인 4인파티가 올해 초에 시즌 2를 시작했었는데요. 눈이 녹기 전에 5월까지 진행했었는데 다시 눈이 오도록 아직 5월에 멈춰있습니다. 그냥 꾸준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모이면 시작하는게 맞는거 같아요. 풀방도 좋지만, 끝까지 가는 것도 중요하다구요.

저는 뭐, 내년 중으로 끝낼 수 있겠죠?

디크립토 (Decrypto) 2회

딱 두 판 했지만, 알 건 다 압니다. 이 게임은 좋은 게임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게임 소개부터 ‘뭔 소리여, 아우 구려.’ 하는 표정으로 룰 설명을 듣는 사람들을 모시고 어떻게든 첫 판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자 여섯이서 했는데 아주 즐겁게 했어요. 웃느라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구요.

팀전이고 라운드마다 출제자가 암호화된 신호를 보냅니다. 이 신호는 상대방이 도청하지만, 우리 편에겐 암호 해독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아군과 상대편 모두에게 출제자의 신호를 맞출 기회가 주어지며, 정답은 양 쪽에게 모두 공개됩니다. 상대방은 알고리즘을 모르지만, 이전 라운드의 문제와 정답이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에 서서히 추리할 수 있게 됩니다.

각 팀마다 1~4 네 개의 알고리즘을 갖습니다. 알고리즘은 하나의 단어로 돼 있구요. 출제자는 비밀리에 신호 카드를 뽑습니다. 사진에선 2, 3, 1이 나왔네요. 아군에게 2 3 1을 전달해줘야 합니다! 알고리즘 단어를 보고, 2번과 관련된 단어, 3번과 관련된 단어, 1번과 관련된 단어를 순서대로 던져줍니다. 이 게임의 전략 포인트는 정보의 비대칭을 이용해 중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신호를 보내면 상대방이 눈치챌 것이고, 너무 꼬아서 신호를 보내면 우리 편도 못 맞춰요. 게임은 8라운드 동안 진행되며, 상대방 신호를 두 번 맞추거나, 우리 신호를 두 번 틀리면 끝납니다. 8라운드 동안 승부가 안 나면, 상대방의 알고리즘 네 개를 모두 추리해, 많이 맞춘 쪽이 승리합니다.

코드네임 같은 단어 게임이 다 그렇듯이, “아니 이걸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부분에서 빵빵 터질 요소가 많아요. 합리적인 문제를 내지 마십시오. 이승의 것이 아닌 단어를 제시하세요. 저세상 신호를 받은 아군은 머리가 터지겠지만 상대방은 갈피조차 못 잡을 것입니다. 마침내 저승의 신호를 해독해 낸 아군이 동료에게 “이게 이거 아냐?”라고 의견을 제시합니다. 동료도 깨달음을 얻습니다. 남은 것은 은밀한 공감대로부터 오는 폭소를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우린 아는데 너넨 죽어도 모를것이닼ㅋㅋ 출제자의 어깨와 콧대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것은 덤입니다.

3:3만 해 봤는데, 2:2는 내가 얻은 이 깨달음을 같이 공유할 팀원이 없어서 재미가 덜 할 거 같아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출제자를 째려볼 수는 있겠군요. 이걸 문제라고 내다니! 잘했어! 반대로 너무 나만 아는 문제를 내면 공감대가 안 생겨서 웃을 일도 없는 게 단점이에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게임 끝난 후에 “이건 왜 이거야?” 하는 청문회를 마련합시다. 아주 주리를 틀어야 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까봐 모래시계를 같이 줬는데요. 저는 안 썼어요. 창의력은 여유에서 나오는 겁니다. 주변에 사고와 사상이 독특한 사람이 많다면 즐거운 경험이 될 겁니다.

선플라워 밸리 (Sunflower valley) 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