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남자 알렉스 (Feat. 큰 거 한방)

Equin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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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오후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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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게임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매 해 우수한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는, 주목할만한 게임 디자이너도 그만큼 많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창조하는 게임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하게 담아내는 디자이너는,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설령 그런 게임이 세상에 등장했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주목을 받는 게임은,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지요. 다른 디자이너들이 쉽게 모방하게 되면, 작가의 아이덴티티는 그만큼 희석이 되기 마련이지요. 다시 말해, 어떤 작가를 보고, 게임을 떠올릴 수는 있습니다. 이 마저도 흔한 일은 아닙니다만, 역으로 어떤 게임을 보고, 한 작가만을 떠올리는 건, 아주 드문 일이 됩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실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디자이너가 모방하기 힘든 스타일.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디자이너라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몇몇 디자이너들이 명단 상에 거론되겠지만, 알렉스 란돌프를 첫 줄에 거론하는 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단순함”입니다. 그냥 단순함이 아니라, “오묘한 단순함”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는, 아주 단순한 논리구조에서, 무엇이 게임의 요소가 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이를 게이머에게 툭 던져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포인트를 짚어내는 능력이, 평범한 사람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기에, 저같은 게이머는 물론이고, 다른 디자이너도 감히 흉내를 내지 못하고, 그저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부족한 필력으로 감히 대가의 작풍을 평하려 하기에 조심스럽네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거북이 알 경주 테마의 마헤(Mahe)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란돌프는 주사위 3개만으로 이 놀라운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주사위를 더 굴려서 위험을 감수하고 멀리 가느냐, 덜 굴려서 안전하게 조금만 갈거냐. 이 단순한 딜레마가 게임의 핵심이자 전부입니다. 물론 다른 거북이 등에 무임승차하는 유쾌함이 더해졌지만, 게임의 로직은 이렇게 놀라우리만큼 단순하고, 또한 오묘하지요.

이런 단순함은 아예, 테마를 걷어낸 추상전략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트윅스트(Twixt)라는 게임은, 단순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게임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 사례일 겁니다. 서로 번갈아가며 핀을 하나씩 꽂다가, 일정한 거리에 핀들이 나열되면 서로 연결(link)이 되고, 그 연결로, 사각의 판에서 양쪽 끝을 연결하면 이긴다는 것이 게임의 전부입니다. 내가 가로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라면, 상대는 세로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가 되고, 따라서, 공격이 곧 방어가 되는 절묘한 구조지요. 정말 놀라우리만큼 단순한데, 또한 오묘합니다.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아마도 이 게임을 한번이라도 접해보신 분이라면, 어떤 뜻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밖에도 차오차오, 베니스커넥션 등, 규칙 설명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지만, 참으로 오묘한 포인트를 잡아내서 게임으로 만드는 알렉스 란돌프 만의 능력은, 감히 다른 이들이 흉내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의 게임은, 작가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로 접해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 한번 접해보고, 역시나(!) 충격을 받은 그의 게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충격을 받았을 때는, 이미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게임이 되어있는 상태였지요. 독일 e-bay와 에센 박람회장에서 이 게임을 발견했을 때, 거의 조건반사로 구매했을 정도로, 저는 그 게임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거든요.

이 게임 역시 단순하지만, 오묘합니다. 그리고 마헤에서처럼 7이라는 숫자의 매력, 아니 마력을 아주 잘 활용했지요. 게임은 간단한 땅따먹기 게임입니다. 땅을 사기 위해 돈을 쓰고, 마지막에 땅의 가격으로 승자를 가리는, 이른 바 경제게임 같은데, 이 게임의 핵심이 되는, 땅의 주인을 정하는 오묘한 구조 덕분에 단순한 경제게임의 카테고리에 가둔다면 꽤나 억울하겠네요.

어떤 땅에 게임 참가자의 색상을 나타내는 소유권 표식이 7개가 올라가는 순간, 땅의 소유권이 결정납니다. 그 땅의 주인은, “단독으로 가장 많이 놓인 소유권 표식의 주인”입니다. 이게 사실 게임의 전부입니다. 경매, 대출 이런 건 부가적인 거지요. “단독”과 “최대”가 7이라는 숫자와 결합하면, 이게 아주 오묘하게 됩니다. 만약 해당 땅에 4개 이상의 큐브를 놓으면, 단독 과반 확보이므로, 당연히 땅주인이 되겠지요. 하지만, 3개를 놓아도 그 땅의 주인은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3+3+1로 7이 되는 경우, 1의 주인이 땅을 갖게 되니까요. 마찬가지로 2+2+2+1의 경우도 1의 주인이 땅의 소유자가 됩니다. 다시 말해, 큐브를 1개만 넣어도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무조건 큐브를 많이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이게 게임을 만들어냅니다. 시종일관 질주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승자가 될 수 없는 구조거든요.

역시나 이런 오묘한 단순함이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두고두고 갈망하게 되는... 아아! 란돌프! 이 마성의 남자!

일전에 작성한 글에서, 이 회사(!!)의 라인업에 마헤-빌라봉에 이은 거물급 3번타자, [큰 거 한방]이 등장할 거라고 했는데, 바로 이 게임입니다.

[빅 샷(Big Shot)]

오랫동안 타국에서까지 애타게 찾던 게임이, 이제 한글판으로 등장을 했네요. 감개무량입니다.

역시나 이 회사 사장님은 소문도 잘 안내고 있네요. 제가 이런 명작을 출판했다면, 몇 달동안은 북이건 꽹과리건 두들기고 있을텐데 말이죠.

아직 마헤-빌라봉을 갖추지 않았다면, 얼른 장만하시고, 그리고 이 게임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상대의 게이머 DNA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1번타자부터 시작했다면, 3번타자의 [큰 거 한방]에 반드시 득점하고 있을테니까요.

이 회사 라인업의 4번타자는 과연 누가(뭐가) 될까요? 정말 즐거운 기대와 상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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