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 DM 가이드 - 전투를 재밌게 만들어보자 v0.1

너굴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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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26 오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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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에서 가장 인기있는 부분을 고르라면 역시 전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대만 툭 쳐도 생사를 오가는 레벨 1들의 싸움도 귀엽지만,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강렬한 힘과 마법이 뒤섞이는 고레벨들의 싸움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조율하는 것 또한 DM의 몫. DM의 지루한 진행이 게임에 녹아들기 시작하는 순간, D&D의 전투는 뻔하고 지루하며 반복적인 작업이 되고 맙니다.

오늘은 몇가지 방법을 통해 전투를 좀 더 재미있고 실감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해요.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DM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뛰어난 기라성 같은 분들의 노하우 글에 비하면 제 글은 가장 기초적인 부분만 긁적거리는 가벼운 글입니다.

저 같은 햇병아리 DM들 혹은 워너비 DM 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몸으로 부딪쳐가며 배운 것들을 글로 짧게나마 풀어냈으니 DM이란 것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더 잘할 수 있게 되는지 이해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참, 해당 글은 D&D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다른 RPG에도 두루두루 통용 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1. 플레이어들을 영웅처럼 묘사하세요.

자, 전투가 발발했고 플레이어들이 움직일 차례라고 생각해봅시다.

DM : "클로노아의 차례입니다. 무엇을 하시겠어요?"
클로노아 : "고블린을 공격할게요. 17이요."

DM : "적중했습니다. 데미지는?"
클로노아 : "8이요"

DM : "고블린이 8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아직 죽진 않았어요. 에이곤의 차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이곤 : "워해머로 공격할게요. 8이요."

DM : "아... 공격이 먹히지 않았어요. 이제 고블린 차례입니다."

위 진행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빠른 진행이죠. 음... 좋게 말하면 포인트만 집어내는 직관적이고 빠른 흐름이지만 내용 면에서는굉장히 건조한 느낌을 줍니다. 마치 MMORPG 화면 구석에 뜨는 전투 로그 같죠. 평균 세션시간이 4시간이라고 가정하고 20~30분짜리 전투가 3~5번 발생한다고 했을 때, 저런 대사를 2시간 가까이 해야한다면 그때도 플레이어들이 재밌다고 느낄까요? 마치 한두번 보고 더 이상 보지 않는 온라인 게임 속 전투 메세지처럼, 플레이어들도 DM이 전달하는 정보에 점차 흥미를 잃고 주사위 결과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런 단순한 전투 진행은 많은 DM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입니다. NPC, 마을, 분위기 같은 것은 설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비교적 세심히 묘사하지만, 다양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전투시엔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기억하고 체크하느라 묘사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일이 쉽게 벌어지거든요. 저 역시 장시간 플레이로 인한 피로가 누적되면 점점 묘사가 생략되고 짧아지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죠.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주시하며 묘사에 조금만 신경을 기울여보세요. 플레이어의 일격을 멋지게 포장해주는 것만으로도 전투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DM : "클로노아의 차례입니다. 무엇을 하시겠어요?"
클로노아 : "고블린을 공격할게요. 17이요."

DM : "클로노아가 경쾌한 발놀림으로 찌르고 들어갑니다! 고블린이 당황하며 방패로 몸을 가려보지만 클로노아의 칼날을 막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데미지는?"
클로노아 : "8이요"

DM : "날카로운 칼날이 고블린의 허리춤를 스쳐 지나갑니다. 푸슛-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피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불타는듯한 고통이 느껴지는지 가래가 끓는듯한 소리로 비명을 질러댑니다. 좋은 기세의 공격이었으나 고블린의 전투 의지가 꺾인 것 같진 않아요. 에이곤의 차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이곤 : "워해머로 공격할게요. 8이요."

DM : "에이곤이 포효하며 워해머를 휘두릅니다. 공기를 찢는 소리가 동굴 내부에 울려퍼지는가 싶더니 워해머에 맞은 돌이 으깨지며 자갈이 튀어오릅니다. 클로노아에게 상처를 입은 고블린의 얼굴색이 샛노랗게 변합니다. 두 눈에 공포가 깃들었어요! 이제 고블린 차례입니다."

어떤가요. 단순한 공격선언이 유려한 칼놀림으로 묘사되고. 어이없는 공격실패가 적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풀스윙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플레이어들의 간단한 행동을 상세히 묘사하고 포장해주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게임 내에서 대단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게 됩니다. '성공했습니다 / 실패했습니다' 같은 간단한 설명보다 훨씬 더 몰입감을 느낄 수 있게 되죠.

물론 전투 내내 이러한 묘사를 하는건 쉽지는 않아요. 복잡한 묘사가 지속되면 말하는 DM이나 듣는 플레이어 모두 금방 지치고 말죠. 저 같은 경우는 전투 도입부터 2~3 라운드까지는 상세하게 묘사하는 편이며, 전투가 길어진다면 플레이어 / 적 NPC 의 행동묘사를 1~2 문장 정도로 줄여서 짧게 설명합니다. 이미 초반에 상황 묘사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전투에 집중한 상태라 별 문제가 안돼요.

다만 가끔 크리티컬이 터지거나 커다란 기술을 구사할 땐 다시 한번 화려한 미사여구를 통해 플레이어의 행동을 크게 묘사하며 확실하게 띄워주세요! 점점 긴장감이 떨어지는 전투에 다시 한번 박진감을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DM은 플레이어들의 눈이예요. 그만큼 DM의 묘사는 중요합니다.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멋지게 묘사하세요.

2. 급박함을 이용하여 부드러운 순서 전환을 이끌어내세요.

묘사를 충분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좋은 전투를 만들어 갈 수 있지만, 여기에 살짝 더 양념을 치면 좀 더 자연스러운 진행. 즉, 부드러운 순서 전환도 가능해집니다.

위에 예시를 다시 볼까요? 장황한 묘사는 생략하고 턴을 넘기는 부분만 살펴봅시다.

DM : "클로노아의 차례입니다. 무엇을 하시겠어요?"
클로노아 : (...)

DM : (...)
클로노아 : (...)

DM : "(....) 에이곤의 차례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이곤 : (...)

DM : (....) 이제 고블린 차례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OOO 차례입니다"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사용한다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예요. 문제는 저 말을 2시간 동안 반복해야 하는 경우죠. 이러한 반복적인 표현 대신 상황설명을 통한 위기감을 이용하여 행동을 촉구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DM : "좌측에는 고블린 3마리가 활을 장전하기 시작합니다. 우측에는 죽어가는 마을 사람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어요. 전방에는 기세등등한 고블린 한마리가 방패를 칼로 두드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클로노아는 어떻게 행동할건가요?"
클로노아 : (...)

DM : (...)
클로노아 : (...)

DM : "(....) 클로노아가 고블린를 제압하는 동안 좌측의 고블린들이 에이곤을 향해 시위를 당기기 시작합니다. 마을 사람의 눈이 감기기 시작해요. 숨을 거둘 것 같습니다. 에이곤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이곤 : (...)

DM : (....) 에이곤이 휘두른 워해머에 공포를 느낀 고블린들이 마을 사람을 흘끗 쳐다보더니 클로노아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어떤가요?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정보를 환기 시켜줄 뿐만 아니라, 선택지를 보여줌으로써 결단을 내려야 하는 딜레마를 안겨주고 있고, 무엇보다도 '차례입니다' 같은 말을 쓰지 않아도 누구의 순서인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지요?

전투묘사와 마찬가지로 연습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 역시 머리속으론 언제나 이 방식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4~5시간의 세션을 진행할 때면 'OOO의 차례입니다' 같은 간편한 말로 상황을 때우려고 하는 나쁜 습관이 나오더라고요. 조금 더 집중하여 순서 전환에도 신경을 써준다면 전투의 재미와 몰입감은 한층 더 살아날거예요. 가능하다면 플레이어들의 차례를 선언하기 전에, 현재 그 사람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행동을 요구하세요. 원활한 진행을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3. 시간 제한으로 속도감을!

D&D 에서 1 라운드는 6초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몇 마디 하면 훌쩍 지나가버리는 그런 짧은 시간이죠. 그런데 간혹 플레이어 중에서 결단을 내리고 주사위를 굴리는데까지 다소 오랜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2~3인 같은 소규모 그룹이라면 상관없지만 5인 이상으로 이뤄진 그룹일 경우 이러한 병목현상은 전투가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주요한 원인이 됩니다.

저는 플레이어들이 어느정도 숙련자라고 파악되면 대략 3~5초 정도의 시간만을 주고 행동 선언을 하게 하는 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결과처리가 아니라 '선언' 자체에 걸리는 시간입니다.)만약 행동 하지 않을 경우(혹은 못할 경우) 해당 플레이어는 특별한 행동 없이 수비자세로 턴을 넘기는 것으로 처리하죠. 다소 빡빡하죠?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로 전투는 매우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6초라는 짧은 (게임 속)시간 동안 플레이어들은 상황을 읽고, 반응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어~~~ 음~~~ 어떻하지~~~ 같은 태평한 소리를 할 시간 따윈 없어요. 상황을 계속 읽어가며 최대한 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건 당연합니다. 적들은 여러분의 캐릭터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둘째로 플레이어들에겐 생각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고블린 5마리와 플레이어 5명이 붙는다고 했을 때, 각 플레이어에겐 최소 9턴 (플레이어 4명 + 고블린 5마리)만큼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물론 턴 직전에 생긴 변화로 작전을 바꿔야 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그 정도 변화까지 고려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어요. 만약 곤란한 상황이라 즉각 대처가 어렵다면 행동 직전에 2~3개 정도의 질문을 함으로써 상황판단 + 시간을 버는 것 정도는 허용해줍니다. 원활한 진행이 목적인거지 플레이어들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게 주 목적은 아니니까요.

물론 초보자들 혹은 다뤄야 할 마법이 많은 마법사들에겐 좀 더 널널한 시간을 주는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안그래도 경험 부족 / 숙지 미숙으로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시간압박까지 들어오면 너무나도 가혹하니까요. 설령 숙련자들이 있는 모임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곧 규칙이다" 같은 고압적인 자세로 규칙을 도입하진 마세요. 1분, 30초, 15초, 10초, 5초 이런식으로 차츰차츰 줄여나감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을 통해 적정선을 찾아내는 조율 과정이 중요합니다. 어디까지나 재밌으라고 즐기는 게임인데,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에서 압박을 받는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니까요.

이 밖에도 지형 지물을 이용한 전투. 몬스터의 특징을 이용한 전투. 주사위를 여러개 굴려서 진행을 빠르게 하는 꼼수. 복잡하고 귀찮은 순서 & 효과 관리 대신 종이 한장으로 정리하여 진행 속도를 올리는 요령 등 다양한 트릭이 존재하지만 일단은 이 세가지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좀 더 재미난 전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거예요.

다른 방법은 기회가 되는대로 더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초보 마스터 분들. 모두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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