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학교에서는 #13(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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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22:46

마지막이네요.

하지만 여기는 쿠우우우우울한 상류 사회인들이 놀고 있는 서울 서부의 중학교.

마지막이라고 주절주절 늘어놓는 건 쿠우우우울하지 못하니

바로 후기 시작.

1) 히어로즈 오브 랜드 에어 앤 씨

마지막이니만큼 이 제목 적기 귀찮은 게임을, 보라에 리뷰도 거의 없는 이 게임을 해볼까했습니다.

마침 저 포함 딱 네명이라 잽싸게 세팅하고 자, 설명을... 하는데 한 녀석이 와서 자 네가 앉아. 난 설명만. 자 그럼 설명을.... 하는데 또 한 녀석이 와서 잠깐 기다려봐. 이거 설명하고 딴 거 하자. 자 이제 설명을.... 하는데 또 한 녀석이 나타남.

이건 뭐 한 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걸렸네 신나게 그네를 탔다네... 두마리 코끼리가 거미줄에... 세마리 코끼리가... 도 아니고, 곰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세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아빠곰 세마리가... 도 아니고 일단은 놓아두고 인원수도 아이들 6명이 모였으니 뭐할래? 했더니 쿠해요! 딱 여섯명이니 역시 쿠!

그래서 또 벌어진 쿠판. 쿠팡아님.

“정직한 놈은 살아남을 수 없다. 정직한 놈은 무조건 다굴이다.”

몇 판 하더니 아이들은 이미 이 게임의 극의를 깨달았습니다. 시작하자마자 공작이 5명입니다. 나 공작! 코인 3개 가져간다. 나 공작! 코인 3개 가져간다. 두명이 이렇게 했을 땐 그러려니하다 세번째 녀석이 나 공작! 에서 빵 터짐. ㅋㅋㅋ 그러다 한명만 정직하게(앞에 진짜 공작도 있었겠지만) 그냥 수입을 가져가자 그 녀석은 집중 다굴을 당합니다. 훌륭해요. 훌륭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아요. 하지만 사람 성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더군요. 한 번 정직한 녀석은 끝까지 정직하게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녀석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 종잡을 수가 없게 되죠. 이 게임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온갖 드립이 난무하면서(드루와 드루와, 밑장 빼기 등등) 즐겁게 네 판을 했습니다. 저는 구경하며 그동안 아이들에게 시달려 해진 컴포들을 목공풀, 딱풀, 이쑤시개, 테이프 등으로 수리를 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2) 캡틴 소나

캡틴 소나! 개나 소나!! 죄송.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죠! 다만 8명을 모으기 힘들어서 많이들 못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저요? 저는 여덟명 모으는 건 껌이죠. 후후후후후.

캡틴 소나도 작년엔 아이들에게 갓겜으로 불리며 많이 플레이되었던 게임입니다. 오랜만에 꺼내보니 너무 쓰고 닦아 잘 지워지지도 않는 사인펜 얼룩이 잔뜩 묻어있어 작년의 치열했던 바다밑 전투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캡틴 소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인원 말고 또 하나 있었으니... 이게 바로 제가 올해 들어 이제야 캡틴 소나를 꺼낸 이유입니다... 무엇이냐면

룰 설명하느라 잡아먹는 시간이 정말 타 게임에 비해 훨씬 많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에러플 한 번 나면 개판이 되는 게임이기 때문에 룰 설명에 정말 많은 공을 들여야 하죠. 그리고 한 역할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대개는 다른 역할도 해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가 각 역할에 대한 룰을 숙지해야 합니다. 설명을 두 번씩 강조해서 하고 마지막에 정리까지 해줘도... 까먹는 놈은 늘 발생하고... 어쨌든 그럼에도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에 미친듯이 설명을 하고 플레이 시작.

난리도 아닙니다. 북으로 한 칸. 오케이! 오케이! 동으로 한 칸. 오케이! 오케이! ... 드론 사용 가능합니다! 야야 드론 안 돼. 내가 여기 체크 했어. 선장 동으로 두 번 더 가면 자가수리 돼!! 그러다가 상대편이 이동을 번복하면... 야 똑바로 이동해! 방금 북이야? 동이야? 음파탐지사가 난리를 치고. 부상 한 번 하면 줄치고 그러다가 또 야 이렇게 줄치면 빠꾸당해. 넌 선도 제대로 못긋냐?! 또 그러다 야 위치 찾았어! 여기야 여기. 야야 어뢰 사용가능 상태로 만들어! 선장 그러면 북 한 번, 동 2번 가야돼. 무비무비무비!! I6에 어뢰 발사! 안 맞았는데? 뭐?! 웃기지마 너네 방금전까지 북북동동남서남 아니야?! 음... 아닌데 아까 남남남으로 바꿨잖아. 야이 xxxx 똑바로 안 할래?’ 시끌벅적 난리입니다. 아주 아주 재미있어요. ㅋ 설명할 용기가 있고 평소 행실이 올바르고 품행이 단정하여 친구가 많으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게임이에요. :)

이 게임 설명 후 아이들이 학원도 안 가고 내리 세 판했습니다. ㅋㅋ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고 하면서요.

3) 하이 소사이어티

결국 부르심 당한 아이들이 돌아가고 네 명이 남았는데 그렇다고 히어로즈 하자니 시간이 애매하고... 아이들은 어김없이 하이 소사이어티를 꺼내들더군요. ㅋㅋ

이번 후기에 너무 많이 등장해서 이 게임은 더 할 말도 없습니다. 이 게임도 아이들 성향이 드러나는데 항상 돈이 제일 적어서 탈락하는 아이, 항상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안 사고 게임이 끝나는 아이, 그냥 생각 없이 본능에 따라 소비하는 아이, 전략적으로 소비하는 아이 등등. 딱 아이들의 평소 성격이 드러납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일았지. ㅋㅋㅋ

이렇게 방학 중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보드라이프가 끝났습니다.

뭔가... 원없이 플레이는 못했지만 매일매일 보드게임을 하면서 웃고 즐긴 걸 생각하니 그래도 행복한 방학이었구니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방학이었을까요? ㅎㅎ

제가 참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문득 올리고 싶어지네요.

미당 서정주의 우리 데이트는 이라는 시입니다.

서정주는 친일을 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시를 남긴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여기서는 그냥 시만 보기로 해요. :)

이 시는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불귀신이 된 지귀라는 남자에 대한 설화가 모티프입니다.

우리 데이트는

서정주

햇볕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