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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Here I Stand (제가 여기 있나이다) 오스만 플레이어 후기
베크렐 쪽지보내기   | 조회수 993 | 추천 1 | 작성 IP: 147.46.***.*** | 등록일 2018-06-11 02:23:21
내용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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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 있나이다

 (2006년)
Here I Stand
평가: 2 명 팬: 2 명 구독: 2 명 위시리스트: 2 명 플레이: 2 회 보유: 24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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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베크렐입니다.

 

요즘 테마가 날이 선 게임들을 여럿 찾아다니는 중에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의 유럽 정세를 다룬 Here I Stand라는 게임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운좋게도 게임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인 Here I Stand 모임 구인글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Here I Stand (제가 여기 있나이다)은 최적 인원 6인, 추천 인원 3인의 요상한 적정 인원을 가진 게임이며,

1517년 부터 1555년까지의 기간 동안 유럽 대륙에서 활약한 6개의 세력을 플레이해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합스부르크, 프랑스, 영국, 오스만, 교황청, 프로테스탄트의 6개 세력입니다.)

 

다인플을 추구하는 여러 워게임들 중에서도 Here I Stand은 각 세력의 승점 획득 방식과 플레이 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비대칭적인 게임입니다.

크게 둘로 나누자면, 군사 행동을 통해 지역을 정복하는 네 세력(합스부르크, 프랑스, 영국, 오스만)과 종교개혁을 통해 세를 불리거나 그를 막으려는 세력(교황청, 프로테스탄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세부 사항으로 가면 승점을 획득하는 경로는 더욱 다양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는 이정도로 하고, 모임 후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모임에는 저를 포함하여 총 6인이 참석하여 송파 푸른하늘고전게임카페에서 오후 2시부터 진행되었습니다.

 






1517년도부터 시작되는 시나리오의 초기 배치를 완료하는데에는 약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림으로 표현된 초기 세팅법이 없어 시나리오북을 보며 일일이 세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개인 보드 뒷면에 있는 초기 세팅법은 1532년(턴 수로 따지면 3턴) 부터 진행하는 세팅법입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워게임에 경험이 없는 저는 상대적으로 승점 획득 경로가 간단하고 지리적 위치가 유리한 오스만 제국을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서술하는 게임 후기는 거의 전적으로 오스만 시점에서 바라본 유럽의 정세를 다룹니다.

 



 

게임 시작 후 초기의 모습입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독일의 일부 선제후령이 신교를 받아들이고 기나긴 여정의 시작을 알립니다.

오스만을 받아든 제게 룰마스터님께서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주셨기 때문에 앞으로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 전쟁을 주로 하는 오스만 : 헝가리를 경유해 합스부르크의 수도 빈을 공격하고 유럽을 동쪽에서부터 잠식해 나가는 타입

2. 평화를 주장 하는 오스만 : 모든 세력들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해적질을 통해 승점을 야금야금 쌓아나가는 타입

 

일단 초기 핸드에 해적질을 가능하게 해 주는 멘데토리 이벤트 카드가 없었고, 오히려 공성전에 유용한 카드들이 많아 1번 전쟁광 오스만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갓 싹이 튼 프로테스탄트는 독일의 선제후령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교황은 아직 위협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아보였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선 프랑스 북부 지역에 발을 뻗은 영국군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보였고, 합스부르크 황제의 의중은 알아차리기 어려웠습니다.

 



 

이후 저는 북쪽을 향해 폭풍 진격하여 헝가리의 두 개의 관문을 함락시키고 합스부르크 황제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외세의 침략에 무너져가는 헝가리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휘하에 거두고 직접 오스만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합스부르크의 수도 빈의 근처에 여러 개의 초록 깃발을 꽂아 황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곧 벌어질 대규모 전투를 준비하기로 합니다.

제 손에는 공성병기인 공성포 카드가 있었고, 빈을 탈취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제 예상대로 합스부르크의 수도 빈은 쉽게 제 손에 들어왔고, 이 때까지만 해도 저는 유럽을 제패할 전쟁군주 이교도가 될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슐레이만은 휘하에 12개의 부대를 지휘할 수 있고, 이는 다른 세력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거대한 부대입니다.

 

그러나 이런 오만 방자한 이교도 무리를 유럽 균형의 수호자 합스부르크 황제가 가만히 둘 리 없었고, 본거지 이벤트 카드를 사용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바로 독일 내륙으로 순간이동합니다.

주로 가성비 좋은 용병들로 구성된 대규모 부대를 순식간에 편성한 황제는 빈 재탈환 작전을 펼쳤고, 결국 슐레이만은 빈을 지키지 못하며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다음 턴이 되어 황제에게 승점을 바쳐가며 슐레이만을 겨우 이스탄불로 모셔올 수 있었고, 겨우내 그러모은 정규군 1부대를 제외하고 모든 지상군 부대가 전멸하는 뼈아픈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황제는 옛 헝가리 영토를 수복하는 데 그치고 오스만 본토 침략을 하지 않음으로써 오스만에게 큰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 때부터 약 12년간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게 됩니다.

황제는 오스만보다 약 두배 많은 수의 카드를 드로우하여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했고, 오스만 제국은 그 강대함 앞에 무릎을 꿇고 쥐죽은듯 지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부터 저는 차라리 제발 해적선을 만들 수 있게 강제 이벤트가 발생했으면... 하는 기도를 알라신께 올리게 되었으나, 신은 오스만을 버렸습니다.

해적선을 제작하게 해 주는 이벤트는 강제로 발동되기 직전의 타이밍에 겨우 발동되었고, 저는 그 동안 합스부르크 황제의 눈을 피해 아테네에서 정규군을 주섬주섬 규합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스만 제국의 본거지 능력은 매 턴 정규군 4 부대를 생성하는 고효율을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CP를 지상 정규군 편성에만 주력하였고, 유럽의 정복에는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다른 세력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사실상 관전자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그동안 유럽에서는 슈말칼덴 동맹이 형성되며 프로테스탄트가 정식 국가로 인정받았고, 점차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교황과 프로테스탄트의 신학 논쟁은 식을 줄을 몰랐고, 수시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교황은 언제 돌아설 지 모르는 영국에 카돌릭의 위세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자 하였고, 수많은 영어권 신교도 논쟁가들이 토론장에 끌려나갔습니다.

그러나 잦은 투닥거림에도 종교적 논쟁의 결론은 나지 않았고, 신교와 구교간의 논쟁은 화형당한 신교 논쟁가 한 명만을 남긴 채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와중에 프랑스는 오스만의 전철을 밟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할 길이 막막한 영국에게 원하는 수준의 프랑스 북쪽 땅을 내어주고 합스부르크의 요새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차곡차곡 모은 지상군 병력으로 요새를 탈환한 프랑스는 오스만이 빈을 점령했을 때 처럼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황제는 프랑스군에게 내릴 철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내민 카드에는 프랑스군의 대부분을 차지한 용병들에게 프랑수아 1세가 제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결국 참다못한 용병들이 떠난 프랑스군은 모래알처럼 와해되고 맙니다.

견디기 어려웠던 프랑스는 영국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이 둘은 합스부르크 왕의 정복 승리를 방해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항구 탈환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결과 프랑스 국토는 전쟁터가 되고, 이곳저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하여 봉합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오스만 제국은 해적선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오스만의 바르바로사는 알제리를 해적 소굴로 만들고 지중해의 해적왕이 되기 위해 차곡차곡 준비를 해 나갑니다.

 



 

오스만이 오랜 세월 동안 이 악물고 모은 지상군과 해군은 그 위용을 어느 세력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워졌습니다.

슐레이만은 최대 18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부관으로 이브라힘을 항상 대동하기 시작했고, 다시 합스부르크의 빈을 탈환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합스부르크 황제는 영국과의 식민지 쟁탈전에도 관심을 게을리 할 수 없었고, 프랑스 잔존병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는 것도 막아야 했으며, 오스만 해적떼의 창궐도 신경써야 했습니다.

과도한 업무 부담에 지친 황제는 결국 프랑스의 집요한 공격에 포로로 잡혀들어갔고,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병약하지만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에드워드 왕자가 태어났고,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프랑스 영토를 더 침략하는 것 보다 식민지 점령에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신교도 세력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신학 논쟁을 수시로 벌였으나, 퍼져나가는 개혁의 기세를 꺾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위안삼을만한 것은 프랑스 지역은 신교로의 개종이 매우 더디게 이루어져 신교의 승리를 막아섰다는 것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황제는 오스만의 지상군을 억류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발생한 반란을 알려왔지만, 오스만 제국군의 위세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스만 제국군은 다시 헝가리를 침공해 합스부르크의 수도 빈을 불태우고 결국 게임이 끝날 때 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신교도는 교황청과의 지지부진한 신학 논쟁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의 포교 활동을 하지 못하고 승점 25점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는 마지막으로 모은 정규군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해 황제의 관문 지역을 위협했고, 그 결과 황제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해군 억제력을 잃었습니다.

 

이런 혼란한 정세 속에 식민지를 알뜰하게 챙기고, 신교도의 세력 확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영국은 알짜배기 승점을 모두 쓸어갔고, 최종적으로 25점을 달성하여 유럽에서의 승리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영국(1위)

프로테스탄트(2위)

교황청, 오스만(공동 3위)

프랑스, 합스부르크(공동 5위)

로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후 모든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패인을 되짚어보는 복기의 시간을 가졌고, 장장 8시간에 걸친 긴 게임은 막을 내렸습니다.

 

여러모로 오스만을 플레이한 입장에서는 해적질을 통해 얻은 승점이 3점밖에 되지 않는 점이 아쉬웠고,

일찍 해적 이벤트가 발생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남았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관전자 모드에 있으면서 대략적인 게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다시 플레이한다면 다른 세력으로 게임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Here I Stand를 디자인한 Ed Beach 작가의 후속작 Virgin Queen 또한 몇십년 후의 유럽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플레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 게임을 함께 해주신 지엠님, 슷님, 지엠티님, 야구조아님, 김흥국님 즐거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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