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 DM 가이드 - 초보DM을 위한 조언 v0.1 (스압)

너굴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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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30 오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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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눈을 감고 처음 DM이 되는 순간을 상상해보겠습니다. DM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첫날의 그 장면을. DM 경험이 없다면 제가 설명하는 상황을 천천히 머리 속에 떠올리며 자신의 첫 DM 경험은 어떨지 상상해보세요.

자, 드디어 첫 DM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조명이 밝은 테이블의 한켠에 자리를 잡자 오늘의 플레이어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적당히 자리를 골라 앉습니다. 오늘 함께 동고동락할 친구들입니다.

RPG 경험이 있는 친구는 오늘 세션이 기대가 되는지 꽤 밝은 표정으로 음료를 홀짝이며 주위 사람들과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RPG 경험이 전무한 친구들은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테이블이 다소 소란스러운 동안, 지난 밤 닳고 닳도록 읽어댄 규칙서를 꺼내 테이블 한 켠에 놓습니다. 오늘 하루동안 신세 질 주사위, 종이, 연필도 주섬주섬 꺼내어 가운데 놓아둡니다. 친구 중 한명이 RPG에 쓰이는 20면체 주사위가 신기한지 연거푸 굴려봅니다. 데굴데굴 구르던 주사위가 바닥에 떨어지며 튀어오르자, 후다닥 집어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네요.

준비한 캐릭터 시트를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꺼내어 각 플레이어들에게 넘겨줍니다. 이윽고 팔락거리는 종이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야, 너는 직업이 뭐냐?> <전사. 넌 뭔데?> <난 마법사. 원래 게임 할 때도 법사만 하거든> 같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서로의 스탯을 보며 비웃기도 하네요.

그것도 잠시. 준비를 마치고 스크린을 앞에 세우자 대화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모두가 저를 바라봅니다. 오늘을 위해 열심히 읽고 또 읽은 모듈을 머리 속으로 다시 정리 합니다.

“흠흠ㅡ“

헛기침 몇번에 찾아온 정적.

“다들 준비 되었죠? 오늘 진행할 이야기는 ㅡ”

DM의 목소리가 테이블 위에 퍼져나갑니다. 플레이어들의 눈과 귀가 쫑긋거립니다.

그렇게 첫 세션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망했습니다.

네. 잘못 읽으신게 아니예요. 첫 세션은 망할겁니다. 저도 첫 세션을 망쳤고. 숙련된 DM들도 첫 세션은 망쳤을거고. 심지어 D&D를 발표한 작가도 그랬을겁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첫 세션을 망치는 일은 흔합니다. 속 쓰릴 정도로 아픈 말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DM이란건 나레이션, 진행, 판단 등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복잡한 포지션 입니다.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는 초보 DM이 청산유수 같은 나레이션, 막힘 없이 흐르는 진행,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며 다수의 인원을 완벽하게 이끌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루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미안해요. 첫 소개글에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잘할 수 있어요!” 라던가 “문제 없을거예요!” 같은 응원을 통해 격려하겠다고 말했지만, 첫 세션만큼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긴장과 당황을 반복하며 혼란 속에서 게임을 진행하게 될텐데, 아무리 다른 DM들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테이블 위의 진행자는 여러분 혼자입니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홀로 책임져야 하는 마운드 위 투수나 다름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투수는 전략적으로 마운드를 내려오거나 강판이라도 당할 수 있지… DM에겐 그런 선택지도 없어요. 홀로 모든 것을 견뎌야 합니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예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흘러간 스토리. 너무나 부족했던 돌발상황 대응.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기억 안날 정도의 패닉. 돌아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 멋질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던 전투. 그나마 괜찮은 장면은 몇 개 있었다는 위로감.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핑핑 돌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무리 초등학생이었다지만 첫 세션은 말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었어요. 유니콘도 나오고 드래곤도 나오고 현자가 나오고 사람들은 죽고. 플레이어도 죽고. 개판 오분 전이었거든요.

그래도 좋은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RPG 게임은 마스터쉐프 코리아가 아니예요. 쇼미더머니가 아닙니다. 생각보다 플레이어들은 초보 DM의 실력을 엄격하게 평가하지 않을거예요. 숙련된 DM과 비교하지도 않을거고요. 초보 플레이어들은 RPG를 잘 모르니 갸우뚱 하면서도 하고 새로운 체험을 신기해 할테고. 숙련된 플레이어들은 DM의 고단함을 잘 알기에 <처음은 원래 그렇지> 하며 이해합니다.

조금 마음이 편해지나요? 처음부터 모든걸 잘 할 수는 없어요. 이번 경험을 더 나은 세션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됩니다. 좌절하지 말자고요.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100명의 DM이 있다면 100가지 스타일이 존재합니다. 저 역시도 경험이 부족한 DM이지만 이번 글을 통해 몇가지 도움되는 조언을 드릴텐데요. 제 미천한 조언이 여러분의 DM 실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진 않을겁니다.

당연한 말이예요. 고든 램지의 레시피를 본다고 해서 그 사람처럼 요리를 할 수 있는건 아니예요. 비슷하게 흉내를 냈더라도 정작 따라해보니 자신의 입맛과 맞지 않을수도 있고요. 뭐라도 습득하고 몸으로 부딪쳐가며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언 따위 3000개를 읽어봤자 직접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가지 않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초보 DM의 딱지를 떼고 싶다면 딱 이것 하나만 게임 내내 기억하면 좋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키스입니다.

키스.

왐마? 지금 여러분 머리 속에 떠오른 장면은 뭔가요?

Kiss 가 아니라 K.I.S.S. 입니다. Keep It Simple Stupid의 축약어로 “멍청아, 간단하게 해!” 라는 뜻이예요.

저희처럼 경험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DM에게 있어 KISS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초보 DM이 어깨에 짋어지는 무게를 덜어냄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도 가져오거든요. 어때요. 좀 더 알고 싶나요? 어떤식으로 하면 게임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몇가지 방법을 함께 살펴봅시다!

1. 클리셰와 무료 공개 던전를 적극 활용하세요

D&D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재미난 게임 입니다. 코너를 도니 오거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따라오고, 떨어지면 즉사 확정인 절벽을 부유 마법으로 건너고, 오크들의 화살을 피해 통나무에 매달려 급류를 타고 적진을 벗어나는 등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을 경험할 수 있죠.

상상력이 좋은 초보 DM 일수록 이런 기억에 남을 모험을 세션 안에 녹여보려 합니다. 모함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하려 최선을 다하죠. 좋은 자세입니다. 정말 멋져요.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여러분의 등에 꽂히는 불상사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아지며 게임이 엉망이 되기 쉽거든요.

모함가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력한 보스를 만나게 해주겠답시고 희귀한 몬스터를 내놔봤자...

DM : “여러분들은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긴장감 고조)”
모험가들 : “망했다. 뭐가 있나봐…”

DM : ”블루 슬래드가 나타났습니다! 철퍽거리는 발소리가 여러분의 귀를ㅡ”
모험가들 : “블루 샐러드요? 먹는건가요?”

DM : “샐러드가 아니라 슬래드요."
모험가들 : “그게 뭔데요?”

DM : “어… 이렇게 막 키가 큰 개구리 닮은 몬스터인데. 두 발로 걷고 발톱도 길고...”
모험가들 : “아 개구리구나"

이렇게 서로 뻘쭘한 상황이 벌어지죠.

이게 농담이 아닌게, 제가 아이들과 D&D를 할 때 고르곤(소 형상의 강력한 괴물) 같은 위압감 넘치는 괴물을 등장시켰다가, 아이들의 입에서 “고르곤졸라 피자랑 상관있는거예요?” 같은 “우리 할머니도 황소 키워요! 2마리!” 라는 뜬금 고백도 받아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귀여운 상황이지만 그 당시엔 어찌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무서워야 할 괴물이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동물처럼 각인 되었으니까요.

첫 모험은 고블린, 오크, 늑대, 약간의 함정 같은 PC게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로 꾸려도 충분합니다. 진부한 몬스터라서 플레이어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더군요.

D&D 속 몬스터들은 DM이 조종하기 때문에 인간처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부상 당한 동료를 몸으로 감싸 보호하거나, 방패로 무조건 막는게 아니라 벽을 만들어 모험가들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고, 한마리가 플레이어의 팔을 붙들고 있는 동안 다른 한마리가 공격 할 수도 있죠. 쓰러진 동료의 무기를 들고 반격하는 놈도 있을테고, 협력이란 개념이 없는 괴물들은 동료가 쓰러지면 그의 도구를 약탈하며 캭캭 웃을지도 모르고요.

짜여진 스크립트 대로 움직이는 기계 속 몬스터보다 훨씬 생동감 있습니다. 지능을 가지고 움직이는 몬스터를 상대하는건 꽤 신선한 경험이니까 걱정마세요. 꼭 드래곤, 오거, 자이언트, 비홀더 같은 대표급 몬스터와 싸워야만 멋지고 긴박한 전투가 되는건 아닙니다.

던전도 마찬가지예요. 통나무를 타고 급류를 떠내려간다던가, 낭떠러지 같은 절벽에 부실한 다리 하나를 놓고 플레이어들을 몰아넣는다던가, 다양한 몬스터 서로 난투를 벌이는 곳에 모험가들 던져놓는다던가 하는 극적인 상황은 가능한 배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통나무를 타고 도망쳐야 할 플레이어들이 “배수의 진이다. 죽거나 죽이는 것 뿐!” 하며 갑자기 영화 300을 찍거나, 부서지는 다리에 간신히 매달린 모험가를 보며 동료들이 “줄 잘라도 돼요?” 하고 물어보거나, 몬스터가 난장판을 벌이는 틈에 도망가야 했을 플레이어들이 “저기에다 마법을 쏟아부을게요! ”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면? 여러분이 상상했던 극적인 장면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됩니다. 이제부턴 임기응변과의 싸움이예요.

횃불을 들고 어두운 던전으로 들어간다. 고블린, 오크, 늑대와 싸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함정도 밟아본다. 부상을 당하면 쉰다. 열심히 던전을 탐험하다 마지막 방에서 목표를 달성한다. 이야기 끝.

진부해도 이렇게 진부한 클리셰가 없겠지만, 처음 DM을 할 때만큼은 큰 도움이 됩니다. DM 과 플레이어가 가진 클리셰라는 공통적인 감각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대략 알 수 있기 때문에 진행 / 몰입 둘 다 쉽거든요.

또 하나 팁을 드리자면, 처음부터 자작 시나리오를 이용하는 것보단 수많은 실력파 DM들이 만든 무료 원페이지 던전(종이 한장짜리 모험) 같은 단편 시나리오를 구해서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작 시나리오를 이용할 경우 어떻게든 자신이 만든 이야기로 진행이 되게끔 무리해서 이야기를 꺾게 되는 일이 잦은데... 이게 반복되면 당시에는 앞뒤가 맞는 것 같아도 돌아보면 헛소리의 연속인 엉터리 이야기가 되는 일이 흔하더라고요 (네, 제가 초창기에 하던 짓입니다).

나중에 알려드리겠지만 자작 시나리오를 만드는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예요. 그러니 일단은 온라인에 공개된, 많은 사람들의 검증을 받은 그런 단편 시나리오를 게임에 이용하세요. 경력자들이 작성한 시나리오니 믿고서 던전 디자인에 공부할 에너지를 끌어모아 진행에 더 투자하는게 효율적입니다.

잊지 마세요.

심플 이즈 베스트입니다.

2. 플레이어들의 선택지를 줄이세요

RPG는 선택의 게임입니다. 지난 글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DM은 상황 설명 후 언제나 “무엇을 하시겠어요?” 라고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플레이어들을 선택의 기로에 세움으로써 딜레마를 던지죠. 여기내서 내린 결정이 이야기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 RPG 게임만의 특징이자 독특한 재미입니다.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고 혼자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은 레일로딩(Railroading - 철로처럼 일직선으로만 질주하는 플레이)이라 하여 나쁜 DM의 대표적인 예로 비판 받습니다. 그럴거면 영화를 보지 뭐하러 게임하냐는 폭풍 까임과 함께요.

저 역시 플레이어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그로 인한 재미난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 DM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보 DM에 한하여 선택지의 폭을 크게 줄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절벽을 건너는데 불안정한 낡은 다리 밖에 없다고 해봅시다. 이때 만약,

DM : “불안정해 보이는 낡은 다리가 절벽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묻는다면 플레이어들은 다리를 건너거나(좋네요. DM이 예상한 행동이죠), 먼길을 돌아가거나(응?), 절벽을 건너뛰려 하거나(헐;;), 아예 포기하는 등(안돼!!) 몇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혹은 난데없이 행글라이더를 만들려고 한다던가 나무를 베고 이어 붙여 튼튼한 다리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플레이어의 잘못이 아니에요.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대답을 한 것 뿐이니까요.

선택의 자유가 높을수록 플레이어들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며 우리 DM들의 예상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숙련된 DM이라면 잽싸게 대응하며 플레이어들이 가는 방향에 새로운 환경을 놓아줄텐데, 그런 경험이 없는 초보 DM이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리가 없죠.

그러니까 선택의 여지를 주는 대신 정해진 선택지를 2~3개 정도로 줄여서 던져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DM : “불안정한 낡은 다리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명씩 건너가기에도 아슬아슬하게 보여요. 절벽을 내려가는 방법도 마찬가지 입니다.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지만 살짝만 균형을 잃으면 위험할 것 같아요. 어느 쪽도 안전함을 보장하진 못할 듯 합니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 다리를 건널 수 있는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요?”

이렇게 선택지를 대폭 줄이면서도 플레이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DM이 독단적인 진행을 한다는 느낌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대응하기도 쉽죠. 만약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려 한다면? <그 방법은 너무나 위험하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그 방법을 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아보입니다> 라고 못 박으면 돼요. 플레이어들의 생각을 다시 A 혹은 B로 돌려놓는거죠.

물론 이렇게 선택지를 강요하는 방법은 어느정도 경험이 축적되면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게임의 대부분을 A / B 선택지로만 만들어버리면, 머지않아 눈치 빠른 플레이어들은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닳으며 결국은 모든 것이 DM이 계획한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선택의 자유에서 재미를 찾는 게임인데 그 근간이 흔들리면 안되겠죠?

3. 규칙을 다 알려줄 필요는 없다

D&D 플레이어 핸드북은 무려 300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규칙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1/4 정도는 캐릭터 생성. 나머지 1/4는 마법의 효과에 관한 내용이라 해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의 규칙이 존재하죠.

혹시라도 세션 이전에 플레이어들에게 규칙을 전체적으로 훑어주고 시작하셨다면(혹은 그러실 생각이시라면), 저는 그 방법을 재고하는 건 어떤지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대표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죠. 처음 다뤄보는 종족으로 시작할 때 여러분들은 테크트리와 단축키를 모두 암기하고 시작하시나요? 찌르기 타이밍. 멀티 타이밍. 입구 막기 배치방법을 사전에 공부하고 게임에 임하시나요?

아니죠. 일단 마우스를 이용해서 건물 건축, 유닛 생산 등 깨작깨작 게임을 해보다가 캐릭터가 눈에 익고 자주 쓰이는 유닛이 무엇인지 감이 오면 그때부터 단축키를 조금씩 배우며 숙련도를 높여갑니다. 그렇게 반복 연습을 통해 종족이 손에 익으면,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다양한 전략과 운영을 배우게 됩니다.

D&D도 같은 방식으로 배워가는게 좋습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필요한 부분을 그때 그때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이 방식이 가능한 이유가 일반적인 보드게임과 달리 D&D의 규칙은 상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쓰이는데다, DM의 재량에 따라 구부릴 수 있는 유연한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RPG를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에게 딱 한마디만 하고 곧바로 게임에 돌입합니다.

DM : “앞으로 제가 모든 상황을 설명할 거예요. 그 장면을 열심히 상상하시면 됩니다. 애매하거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질문하세요. 최대한 상세히 대답 해드리겠습니다. 묘사 후 <무엇을 하시겠어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동료들과 상의 후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알려주세요. 이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내성 굴림? 공격 굴림? 마법 범위? 짧은 휴식? 긴 휴식? 공방의 비교?

다 필요 없습니다.

이제 게임을 진행하며 필요할 때마다 규칙을 테이블 위에 꺼내어 짤막하게 설명하면 됩니다.

DM : “나무 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빗장이 걸렸는지 덜컹거리기만 할 뿐 열리진 않아요. 무엇을 할까요?”
A : “어… 혹시 부술 수 있나요?”

DM :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제 판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을 부순다는 것은 힘을 쓰겠다는 이야기죠? 그러므로 D20를 굴려서 판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A가 굴린 주사위와 보너스 합이 난이도(DC) 이상이라면 성공합니다”
A : (굴림) “17이예요"
DM : “A가 온 힘을 다해 문을 밀자 뿌드득 하는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문이 활짝 열립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앞으로 다양한 상황을 만나게 될텐데 필요에 따라 이런식으로 판정할거예요.”

어떤가요? 판정 체크에 대한 설명을 게임 속에 짧게 녹여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타입의 판정도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죠?

이렇게 실전에서 써먹어가며 배우는 것들은 강한 인상을 남겨서 오래 기억하는 것 같더군요.

또 하나의 예제를 살펴볼까요. 첫 전투입니다.

DM : “사방에서 고블린들이 쇠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여러분들에게 달려듭니다. 서로 타협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고블린들이 빠른 속도로 접근합니다!"
B & C : “으아아ㅡ 저희도 싸울게요. 칼을 휘두를게요.”

DM : “좋은 대응이네요. 공격을 시작하기 전, 모두 함께 D20를 굴려서 누가 더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지 결정하겠습니다. 민첩을 기준으로 비교하기 때문에 관련 보너스도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과의 순서에 따라 턴을 가질거예요.”
B & C & DM: (주사위 굴림)

DM : “C가 스타트를 끊네요. 최대 6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행동은 그 사이에 아무때나 하시면 돼요.”
C : “고블린에게 다가갈게요. 그리고 칼을 휘두르겠습니다."

DM : “어떻게 칼을 휘두르실건가요?”
C : “어… 배를 향해서 수평으로...?”

DM : “예리한 공격이네요. 맞았는지 확인해볼까요? D20을 굴린 뒤 힘 보너스와 숙련 보너스를 합쳐서 알려주세요"
C : “15요"

DM : “고블린의 방어력을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명중이예요. 이제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는지 확인해볼까요. 무기에 해당하는 주사위를 굴려보세요"
C : “7이요”

DM : “C의 칼날이… (어쩌구 저쩌구 묘사)”
C : “오-! 제대로 때렸네!”

보시면 알겠지만 게임을 멈추지도, 플레이어들에게 전투 규칙의 이론을 다 소개하지도 않습니다. 최대한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곤 플레이어에게 전투를 체감하도록 하고 있죠. 대기, 리액션, 마법, 엎드리기 같은 행동들은 어떻게 가르치냐고요? 어렵지 않습니다. 몬스터들을 이용하세요.

DM : “고블린이 팔자걸음으로 방구석을 향해 달려가더니 방패를 치켜 올리고 여러분을 응시합니다. 이렇게 수비에 치중한 고블린을 공격 할 땐 주사위 두 개를 굴리며 그 중 나쁜 결과값을 이용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비슷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피하기 라고 합니다.)"

DM : “허둥지둥 달려간 고블린이 온힘을 짜내서 비슷한 거리를 질주합니다. 다만 순간적인 질주 때문에 공격 자세를 취하진 못합니다. (이것을 대쉬라고 합니다)"

무슨 종류의 액션이 있는지 하나씩 다 설명할 필요없이, 몬스터에게 그런 행동을 시키고 살짝 언급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이 보고 배우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치 PC게임을 처음 할 때 화면 상단에 뜨는 말풍선 설명처럼( A를 눌러 점프하세요! 두 번 누르면 더 높게 뛸 수 있어요!),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짤막짤막하게 요점만 설명하며 곧바로 게임에 녹여보세요. 교육과 게임이 동시에 술술 진행되는걸 경험하시면 깜짝 놀라실겁니다.

4. 서술과 묘사는 짧고 굵게!

서술은 게임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플레이어들의 눈이 되어주는 것이 DM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모험가들은 DM의 상황 설명이 없으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인만큼, 이 서술 실력이 탄탄하지 않으면 게임의 재미가 크게 휘청거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며 효과 좋은 방식은 무엇인가?’ 에 대한 DM들의 토의는 언제나 활발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어딘가에선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있겠죠.

저 역시도 좋은 서술과 묘사를 위해 공부를 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여러가지 강좌를 참고한 끝에 제게 잘 맞는 방법을 한가지 찾아냈으며 지금은 그 방식이 머리와 입에 자연스럽게 각인 되도록 열심히 반복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인지는 조금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초보DM 들이 겪는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긴장감에 짓눌린 초보DM들은 상황을 묘사할 때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너무 얼어붙어서 묘사를 거의 못하고 단편적인 정보만 제공하거나, 플레이어들에게 정보가 모자랄까봐 지나치게 과한 서술을 하고 말죠. 일단 전자의 문제를 살펴볼까요?

DM : “흙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에 들어섭니다"
A : “뭐가 보이나요?”

DM : “방 한 가운데에 놓인 동물의 가죽이 보입니다. 방 한쪽 구석에는 테이블이 있어요."
A : “무슨 동물이예요?”

DM : “죽은지 얼마 안된 사슴 같아 보입니다."
A : “살펴보고 싶어요"

DM : “수컷 사슴으로 보입니다. 죽은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아요. 마무리가 나빴는지 약간 역한 냄새가 납니다.”
A : “여기 사는 괴물이 만든건가요?”

DM : “(어쩌구 저쩌구)”

지금 이 상황의 문제점이 보이시나요?

컴퓨터로 친다면 모험가는 지금 대사를 넘기는 X 버튼을 계속 쿡쿡 눌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서너시간 동안 반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요. 키보드 사이에 동전을 끼울 수도 없으니, 그 고통이 어떨지 상상도 안갑니다.

아아… 우리도 마우스에서 잠시 손을 떼고 고생하고 있는 이 플레이어를 위해 X를 눌러 조의를 표합시다.

자, 일어납시다.

눈을 감으세요.

머리를 숙이세요.

다시 머리를 드시고

눈물 한방울을 흘립니다

…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자, 그럼 완전 반대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일부러 와닿는 예제를 만들기 위하여 다소 과장하였습니다.

DM : “황토흙으로 펴바른 방에 들어서자 15m x 15m 크기의 아늑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좌측에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작은 의자가 두 개 놓여있습니다. 테이블엔 종이도 한장 놓여있어요. 방 한켠에는 고기가 담긴 통이 놓여있는데 썩어가는지 구역질 나는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우측에는 무기를 담아두는 듯한 나무통이 놓여있는데 텅텅 비어있네요. 이 나무통은 30년전 쯤에 만들어진 것으로(이러쿵 저러쿵) 천장에는 (어쩌구저쩌구 쌰바쌰바 x 3) 바닥에는 (이러케 저러케 휘바휘바 x 10) 자그마한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호로롤ㄹ롤) 방안의 온도가 (이러쿵 저러쿵 꽁냥꽁냥 ) .... (중간 생략) ...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 한가운데에 놓인 숫사슴의 가죽이 여러분의 시선을 끕니다. 무엇을 하시겠어요?”

A : “...네?”

거의 박찬호 프리토킹급 묘사를 듣고 나면 플레이어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높은 확률로 처음 시작이었던 황토방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사슴가죽 정도 뿐일거예요. 그럼 손해 본 것은 뭘까요? 귀에서 흐르는 소중한 혈액이요 -_-

플레이어가 저 방대한 내용을 기억하고 떠올리는건 굉장히 지치고 버거운 일입니다. 반지의 제왕도 저렇게 묘사가 길진 않을거예요.

이러한 과다묘사는 DM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매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부담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밖에도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1)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 힌트가 다른 정보에 파묻히는 바람에 부각되지 않고
2) 플레이어들에게 쓸데없는 선택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정작 스토리에 중요한 힌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별 의미없는 물건들이 표면으로 떠오르니 자연스럽게 플레이어들은 샛길로 빠지기 쉬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사건 1~2개도 감당하기 버거운 초보 DM이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죠.

같은 상황을 두고 DM마다 다르게 묘사하겠지만 아마도 저라면 이렇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DM : “주황빛이 감도는 황토로 빚어진 작은 방에 들어섭니다. 벽에 걸린 램프의 빛 때문에 붉은 기운이 더 짙게 느껴지네요. 좌측에는 소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는 끄트머리가 구겨진 하얀 종이가 놓여있습니다. 최근에 누군가 편지를 쓰다가 만것 같아요. 방 한가운데에는 잡힌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숫사슴의 가죽이 깔려있네요.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사냥 실력은 좋은데, 서툰 실력으로 마감을 했는지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납니다.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습니다. 무엇을 하시겠어요?”

그냥 적당히 줄인거 아냐? 라고 생각할지 모르시겠지만 이 서술은 나름의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황빛이 감도는 황토로 빚어진 작은 방에 들어섭니다. 벽에 걸린 램프의 빛 때문에 붉은 기운이 더 짙게 느껴지네요.”

문장의 시작은 장소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그 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작업을 여기에서 해요. 냄새가 난다던가, 기묘한 느낌에 털이 곤두선다던가 하는 인간의 오감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좌측에는 소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놓여있고 그 위에는 끄트머리가 구겨진 하얀 종이가 놓여있습니다. 최근에 누군가 편지를 쓰다가 만것 같아요.”

플레이어들이 조사할 수 있는 첫번째 물건을 소개합니다. 소나무 테이블, 하얀 종이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편지에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며 <이게 중요한거야> 라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잡힌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숫사슴의 가죽이 깔려있네요.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사냥 실력은 좋은데, 서툰 실력으로 마감을 했는지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들이 조사할 수 있는 두번째 물건을 소개합니다. <사냥 실력이 좋다 = 전투능력이 우수하다>, <서툰 마감 = 섬세한 사람은 아님> 같은 암시를 던지고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어차피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뻔한 사실들은 시간낭비를 막기 위해 처음부터 대놓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길은 없습니다.”

보통 문장의 끝에는 이 공간을 어떻게 떠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편입니다. 갈림길이었다면 “좌측으로는 어두컴컴한 길이, 우측으로는 다소 밝으나 퀘퀘한 냄새가 나는 길이 뻗어있습니다.” 식으로 묘사했을거예요. 딱히 언급할 이유가 없거나 관련된 정보가 없다면 이 부분을 생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묘사는 가능하면 3-6 문장 정도에서 끝내려는 편입니다. 길어보이지만 말로 해보면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아, 첫번째 글에서 제가 예시를 들었던 자투리 글을 다시 살펴볼까요?

DM : “돌담을 지나 코너를 돌자 향신료와 고기 냄새가 가득한 상권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여기저기에서 아주머니들이 여행자의 팔을 붙잡으며 가판대에 놓은 상품을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요.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모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려는 찰나, 어딘가에서 어수선한 웅성거림과 함께 <뭐야? 무슨 일이야?> 하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영주가 저격 당했다!!> 라며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동시에 체구 작은 남성이 A(플레이어의 이름)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갑니다. 무엇을 할까요?”

이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5문장짜리 묘사입니다. 살펴봅시다.

“돌담을 지나 코너를 돌자 향신료와 고기 냄새가 가득한 상권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여기저기에서 아주머니들이 여행자의 팔을 붙잡으며 가판대에 놓은 상품을 가리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어요.”

장소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모처럼 사람 사는 냄새를 느끼려는 찰나, 어딘가에서 어수선한 웅성거림과 함께 <뭐야? 무슨 일이야?> 하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들이 대응해야 할 상황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영주가 저격 당했다!!> 라며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영주가 저격 당한 사실을 알리며 첫번째 조사 대상 - 영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주 보호에 좀 더 무게를 주고 싶었다면 "영주가 의식을 잃었다!! 누가 도와줘!!" 같은 말도 넣었을거에요.

전 추격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묘사할 때 최대한 간략히 처리했습니다.

“동시에 체구 작은 남성이 A(플레이어의 이름)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갑니다.“

용의자로 유력한 남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벤트를 무시하고 장소를 빠져나가는 선택지는 가능하면 제한하고 싶었기 때문에 장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일부러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가요? 짧은 글이지만 묘사는 최대한 줄이고 현재 상황과 해야할 일만 콕 집어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 묘사 방식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결한 구성안에 핵심적인 정보만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예요.

상상은 모두 플레이어에게 맡기세요. 오감을 활용한 단어를 몇가지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자기 입맛에 맞추어 상황을 상상합니다. 우리 생각보다 선명하게요.

그러니 묘사에 치중하며 생각나는 대로 서술하지 마시고, 이 공간에선 무엇이 중요한지. 플레이어들이 꼭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만 시간을 들여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생각없이 뱉은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나중에 서술의 속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가 올텐데, 이렇게 장면이 바뀔때마다 ‘흐음…’ 하며 잠깐 뜸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플레이어들은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말을 고르지? 위험한게 있나?> 하며 착각하곤 DM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는 효과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휴~ 정말 긴 글이었지요? 고생하셨어요. 컴퓨터로 읽으신 분들은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개 스트레칭을. 핸드폰으로 전부 읽으신 분들은 안구 운동을. 너무 길어서 대충 휙휙 넘기신 분들은 손가락 마사지를 꾹꾹 해줍시다. ...좀 세게 누르세요. 아플 정도로. 손톱을 세워서.

기죽어있을 초보 DM들을 위해 응원하는 마음으로 더 많은 조언을 적어내고 싶었습니다. 생각했던 것의 40~50% 정도만 전달한 것 같아 아쉬워요. 하지만 그걸 모조리 쏟아부으면 글의 분량이 어마어마 해지는데다 저 또한 제 앞길도 간신히 가리는 풋내기 DM인지라 순식간에 밑천이 다 드러날지 모르니 일단은 이정도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차츰차츰 버전을 올리며 생각나는 대로 내용을 보강하도록 할게요.

마무리 정리를 하자면

1. 어차피 첫 DM은 기대에 못미친다. 실망하지 말고 KISS 정신을 잊지마라.
2. 클리셰와 무료 던전을 이용하라. 때론 익숙한게 좋다.
3. 플레이어의 선택지를 줄여라. 돌발상황을 사전 예방해라.
4. 규칙을 다 알려주지 마라. 필요한 만큼만 자연스럽게 소개해라.
5. 서술과 묘사는 굵고 짧게 하라. 중요한 것만 전달해라.

입니다.

여러분들의 다음 세션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랍니다!

노력하면 우리도 언젠간 여기저기에서 모셔가려는 그런 뛰어난 기량을 가진 DM이 될 수 있을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키스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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