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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 옛날 옛적에 리뷰 :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너굴너굴 쪽지보내기   | 조회수 900 | 추천 2 | 작성 IP: 208.70.***.*** | 등록일 2018-03-10 09:10:05
내용 댓글 18

옛날 옛적에

옛날 옛적에 : 기사 이야기

옛날 옛적에: 동물 이야기 확장

옛날 옛적에: 매혹적인 이야기

옛날 옛적에: 시페링 테일즈

옛날 옛적에: 요정 이야기 확장


 

발매년도 : 1993년

게임 타입 : 스토리텔링

플레이 타임 : 30분

플레이 인원 : 2-6인

 

 

=====

 
시작하며

 

=====

 

롤플레잉에 D&D가 있다면 스토리텔링엔 옛날옛적에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게임만큼 이야기 하나에 올인한 게임도 드물거든요. 그럼 옛날 옛적에를 리뷰합니다.

 

 

=====

 
규칙

 

=====

 



 
플레이어들은 한 장의 엔딩 카드와 단어카드 몇 개를 나누어 받습니다. 플레이어의 목적은 자신이 가진 단어를 모두 사용한 뒤 자신의 엔딩 카드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이제 시작 플레이어부터 단어카드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손에 있는 이야기 카드에 적힌 단어/표현으로 이야기를 만들 때마다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지요. 이렇게 내려놓은 카드는 이야기 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손에 “공주”, “개구리”, “성” 카드가 있다고 해서 “공주는 성에 사는 개구리를 먹었습니다” 하며 세 장을 우루루 내려놓을 수는 없는 것이죠.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말이 안되거나 지나친 비약이 있는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들고 있는 단어나 간섭카드에 해당하는 무언가가 언급되면 해당 카드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받아 자신이 가진 엔딩 카드를 향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죠.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면 패스를 외치고 다음 사람에게 이야기를 넘겨도 되니다. 이렇게 지적을 받거나, 이야기를 뺏기거나, 패스를 외친 사람은 덱에서 단어카드를 뽑아와야 합니다.

 

누군가 엔딩카드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 게임은 종료되고 해당 이야기꾼이 승리합니다.

 

 

 

=====

 
감상

 

=====
 
개성 강한 게임을 리뷰하길 좋아하는 편인데 왜 지금까지 옛날 옛적에를 리뷰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옛날 옛적에의 장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 해봅시다!

 

 

1. 무한한 상상력

 


 

“결국 우려했던 대로 죽음의 신이 강림하고 말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들풀 냄새 가득하던 초원은 붉은 흙으로 덮혔지.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시체 썩는 냄새. 두 사람은 속이 메슥거렸어.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얼마나 되뇌었을까.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신이 뼈마디 뿐인 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사이를 가리켰어. <약속대로 두 사람 중 한명의 목숨을 거두러 왔다> 그 끝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가 싶더니 동물의 뼈를 날카롭게 갈아만든 투박한 낫이 솟아 올라왔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어. 같은 생각을 했을거야. ‘네가 대신 죽어줘’ 라고.”

 

옛날 옛적에를 즐기는 데 필요한 것은 단 두 가지. 이야기 카드 한 벌과 이야기를 끝없이 뻗어나가게 할 수 있는 상상력 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던 비극적인 전사의 이야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아 탈출을 감행하는 공주의 모험 이야기, 모두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혼자 미치지 않았던 어느 한 남자의 이야기 등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지요.

 

옛날 옛적에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몰입감과 중독성은 정말 굉장합니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건 신기하고도 재미난 경험이거든요. D&D, 겁스, 소드월드 같은 롤플레잉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옛날 옛적에는 자잘한 규칙은 모조리 내다버리고 이야기 하나에만 집중함으로써 창조의 즐거움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2. 자유분방한 분위기

 


 

게임 내내 카드를 사용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빼앗기 때문에 이야기는 천방지축 날뜁니다. 기껏 죽인 공주가 살아나고, 시어머니와 다투다가 또 죽고, 한참 후에 왕자가 또 살리고, 구하러 가던 도중 시간이 모자라 공주가 또 죽고, 빡친(…) 공주가 자신을 살리는 사람을 찾아가 죽이는 등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싶은 이야기로 흘러가기도 하지요. 결국 스토리텔러가 누구냐, 어떤 성격이냐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이렇게 일정한 흐름이 없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게임이 됩니다. 그렇기에 로맨스에서 호러로, 호러에서 서스펜스로, 서스펜스에서 연애물로, 연애물에서 판타지로 바뀌는 등 장르를 초월한 이야기가 만들어지죠. 일정한 패턴이 없기 때문에 매 이야기가 개성있고 흥미롭게 풀려 나갑니다.  롤플레잉 게임에 기승전결이 있다면, 옛날 옛적에는 기승전병(…)이 있다고 해야할까요? 그리고 그 ‘병’이야 말로 옛날옛적에의 매력이자 일반적인 스토리텔링 게임과의 차이점인 것이지요.

 

너무나 자유분방하다보니 몰입감이 떨어지는 일도 종종 있는데, 옛날 옛적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예 주인공 혹은 테마를 하나 정해두고 하는 변형 규칙도 존재하더군요. 참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3. 기억에 남는 추억

 



 

 

일반적으로 보드게임에 대한 추억을 회상 할 때면 특정한 순간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달무티에서 왕이 되어 친구들에게 웃긴 벌칙을 시켰을 때, 아콜에서 생각치 못한 계산 실수로 가족들을 굶겼을 때, 석기시대 도중 자원을 수집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렸더니 1이 다섯개 나오며 망했을 때 등. 전체의 흐름이 아닌 결정적인 순간을 기억하죠.

 

그러나 옛날 옛적에는 플레이 전체, 즉 스토리 전체가 추억이 됩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한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 기억난다. 그때 내가 순무로 고블린 뚝배기를 깨고 다니게 했지. 그래도 왕자와 결혼까진 했으니 잘 된거 아냐? ㅋㅋㅋ”, “무슨 소리야. 그 다음에 알고보니 왕자도 고블린과 한통속이라 순무로 뚝배기 터졌잖아.”, “아 그래서 제 1차 순무대전이 일어났지 ㅋㅋㅋㅋ”. 하며 게임 전체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죠.

 

의외로 이 추억이 굉장히 오래갑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아이들과 옛날 옛적에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3~4년이 지나고 중학생 2학년이 된 애가 문득 “선생님. 갑자기 생각난건데요. 그 이야기 만드는 게임에서 나온 한쪽 눈이 파랗던 소녀 이야기 기억나세요? TV에서 오드아이에 대해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났어요.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하고 연락을 해오더군요.

 

옛날옛적에가 가진 진짜 장점은 이야기를 통해 기억하는 그 날의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자! 그럼 옛날 옛적에가 가진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1. 경쟁이니? 협력이니?

 


 

이것은 전적으로 옛날 옛적에의 태생적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모순을 가지고 있어요. 게임 규칙서의 상단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The object of the game is for the players to enjoy themselves and to tell a good story. (게임의 목적은 플레이어들은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스스로 즐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곧바로

 

“The player who uses all the story cards in her hand and guides the plot to her ending wins the game. (카드를 모두 사용하고 엔딩에 도달한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합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옛날 옛적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협력’하며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이야기가 엉망진창 흘러가고 있더라도 디테일이 살아있고 앞 뒤가 들어맞으며 모두가 이야기를 만드는데 열심이라면 재미 없을리가 없죠. 그런데 “마지막 카드를 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게임상 조건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협력관계이면서도 경쟁관계인 미묘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기려면 카드를 빨리 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뺏기지 않기 위해 묘사도 소극적이게 되고요. 카드는 그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인데 말이죠!

 

솔직히 말하면 이 승리조건은 그냥 게임으로서의 구색을 갖추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승/패에 민감하신 분들에게 일종의 브레이크를 걸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설명할 때 “게임에서 승리한다”는 표현을 피하고 “여러가지 엔딩 중 너의 엔딩카드로 이야기를 매듭 짓는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승자/패자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되는데다, 여러 엔딩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내 엔딩카드로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줄어들죠. 덕분에 카드 하나하나를 좀 더 의미있고 여유있게 쓰더군요.

 

 

 

2. 게임의 재미 = 스토리 텔러들의 능력

 



 

 

스토리 텔링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건 무엇일까요? 바로 스토리 텔러입니다. 이야기꾼이 어떠한 이야기를 만드냐에 따라 게임의 분위기와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틈만나면 사람을 죽이려는 스토리 텔러. 진부한 클리셰만 쓰는 스토리 텔러. 1~2마디 말하더니 곧바로 패스를 외치는 스토리 텔러…  계속 이런식으로 진행 되면 게임이 재미 있을리가 없지요. 옛날 옛적에의 재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를 재미나게 꾸릴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뭉치면 옆에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대서사시가 만들어집니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하지?’ 싶을 정도로 전개가 확확 바뀌며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지요. 가끔 스치듯 언급한 사소한 물건을 다시 게임에 개입시키며 복선으로 활용하는 스토리 텔러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많아 소극적이거나 순간순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한 플레이어들끼리 뭉치면 적막함이 흘러요. 게임을 하긴 하지만 부담스러움에 계속 패스만 외치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D&D, 겁스, 소드월드 같은 롤플레잉 게임은 자잘한 규칙과 게임에서 요구하는 상상력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기로 악명 높습니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에 비하면 새발의 피 입니다. 룰도 간단한 놈이 진입장벽은 압도적으로 훨씬 높아요. 롤플레잉 게임은 마스터의 진행에 따라 행동 선언만 해도 게임이 진행 됩니다. 서투른 플레이어는 게임 마스터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하죠. 그러니 그 인자함 속에서 상상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러나 옛날 옛적에는 그런 자비로움(?)이 없습니다. 내 자신이 플레이어이자 마스터 입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즐기면서 동시에 꾸려나가야 하거든요. 나의 역할이 굉장히 큽니다.

 

결국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분들은 큰 부담을 느끼고 위축 됩니다. 그리고 그 위축된 자세는 게임의 재미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죠.

 

 

 

 


 

규칙의 느슨함, 너무나 자주 바뀔 수 있는 주인공으로 인한 몰입감의 방해, 인원이 많을수록 이야기의 주인이 바뀔 확률이 높아서 다인플 추천 등 자잘한 단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기한 2가지 단점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주변에 야부리(…)를 제대로 터는 사람이 있다면 옛날옛적에는 술+안주와 함께 할 수 있는 갓게임이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서로 패스만 외치다 슬금슬금 카드를 정리하는 최악의 게임이 될 겁니다. 이 게임만큼 추천/비추천을 가르기 어려운 게임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을 구입할 때 스스로에게 “나는 스토리 텔링을 좋아하는가?”만 묻지 마시고, “내 주변 사람들이 스토리 텔링 게임을 좋아하는가?”도 물어보세요. 둘 중 하나라도 No 라면 옛날 옛적에는(혹은 비슷한 류의 게임은) 그냥 넘기세요. 예쁜 그림이 그려진 단어 묶음집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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